★160지맥 산행기/★백하,변산,병풍

변산지맥 1구간(방장산-거담봉-상여봉-바드재)

六德(이병구) 2012. 10. 3. 19:50

.산 행 지: 변산지맥 1구간(쓰리봉-바드재)

 

.산행일시: 20120303(토요일)

 

.날 씨: 맑음

 

.산 행 자: 조진대고문님과 사모님, 산타래님, 無心이님, 六德(5)

 

.산행거리: 40.9(걷기산행: 16.8+차량이동: 24.1)

 

       (장성갈재1.90㎞←쓰리봉/방장산1.40㎞←소갈재1.69㎞→거담봉/삼각점3.13㎞←도산재/

 

       덕화공원묘지1.11㎞←237/수산정1.63㎞←송촌24.1/차량이동유정재3.98㎞←상여봉

 

       /삼각점1.96㎞←바디재

 

.산행시간: 9시간(~휴식포함)

 

.산행코스: 장성갈재(07:00)쓰리봉/방장산(08:06~17)소갈재(09:47)거담봉/삼각점(10:32~44)

 

       산불초소(11:20)도산재/덕화공원묘지(11:45~54)수산정(11:20)송촌(12:54)유정재(14:06)

 

       →초소봉/270m(15:01)사창재(15:11)전망바위(15:43)상여봉/삼각점(16:05~07)노승봉/

 

       352m(16:18)시멘트기둥봉/297m(16:49)바디재(17:03)

 

.산행후기:

 

패장의 산꾼으로 주저앉았지만 그래도 산이 그리워 목마른 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몸부림을

 

쳐보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아쉬운 시간들만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졸지에 관절을 다쳐 악몽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잇는지도 벌써 26개월의 금쪽같은 세월이 지났건만

 

재활이라는 높은 벽에 막혀 헤어나지 못하는 심정은 때론 허탈감에 빠져 세상을 등지는 것이 더

 

편하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이 이따금씩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산꾼이 산행하다 다쳤다면 그래도 서운하지는 않겠지만 생각지도 않은 사고를 당하고보니 너무나도

 

허탈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지난번 성지지맥을 진행한 뒤로는 서있기도 힘든 몸에다 밤에는 통증으로 잠도 못 이루기에 고뇌에

 

육신은 고향의 산줄기인 변산지맥을 앞에 두고서 또한번 깊은 사색에 잠겨본다.

 

지난번 조고문님으로부터 변산지맥을 진행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일정을 연기해 3월초에 진행하자고

 

말씀드렸는데 이번에 합류하지 못한다면 큰 실례가 되고 또 합류한다 해도 따라가지 못하니 이 또한

 

민폐를 끼치는 일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그래 송촌에서부터 유정재까지는 차로 이동한다니 어떻게라도 따라가 보자.

 

10시쯤 잠자리에 들었지만 통증으로 잠을 설치다 새벽 2시에 알람소리에 일어나 215분에 차를

 

몰고 조고문님의 아파트에 들어서니 조고문님께서 벌써 나와 계시어 고문님의 안내로 지하주차장에

 

내 차를 주차해두고 3시가 조금 못된 시간에 출발해 중간에 산타래님을 태워 서해안고속도로로 들어서

 

달리는데 젊은 놈이 뒷자리에 편안하게 앉아 간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스럽고 면목이 없어 고문님께

 

교대운전을 요청하니 괜찮다하시며 운전을 계속 이어가신다.

 

07:00 아무튼 그렇게 조고문님의 수고로 약속장소인 덕화공설묘지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무심이님께서

 

차내에서 주무시고 계시어 우린 먼저 차내에서 준비해간 식사를 가볍게 끝내고 무심이님의 차를 이용해

 

산행들머리인 장성갈재로 이동한다.

 

통일공원이 조성되어 있는 장성갈재에 도착하니 안개가 짙게 끼어있고 이따금씩 지나는 차량의 엔진소리

 

만이 귓전에 들려올 뿐 고요한 적막만이 흐르는 그런 산마루를 관통하는 재인데 내가 영산기맥를 진행

 

때 마지막 구간으로 2009425일 양고살재를 0527분에 출발해 0848분에 지나갔던 재가 아니던가?

 

그때만 해도 밤낮을 모르고 장거리산행을 즐겼던 좋은 시절이었는데 말이다.


(장성갈재)

(변산지맥 분기봉)

 

08:01 통일공원을 뒤로하고 맞은편 숲으로 들어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25분 남짓 올라서면 성터

 

흔적과 같이 돌로 쌓여있는 교통호가 자리하는 능선에 올라섰다 다시 내려서게 되는데 벌써부터 무릎이

 

아파 후미로 쳐져 조심스럽게 내려선 후 다시 눈 쌓인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서 20여분 남짓 올라서면

 

고흥유지지묘가 자리하는 변산지맥분기점에 올라서게 되는데 갓바위와 입암산의 좌측아래 입암면방향

 

으로 운해가 장관을 연출해 파노라마와 같이 펼쳐지는 내장산의 산줄기에 아픈 통증을 띄워 보내면서

 

잠시 휴식을 취해보니 엄동설한의 다져진 땅을 뚫고 올라오는 인동초와 같은 의지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입암면방향으로 조망)

(내장산 방향인 입암산과 갓바위봉으로 조망)

(쓰리봉 가는 길목)

(방장산 조망)

(운해의 장관)
(변산쪽으로 조망)

 

08:15 변산지맥은 이곳에서 우측의 암봉을 올라섰다 내려서야 하지만 그래도 지척에 자리하는 쓰리봉

 

(734m)은 다녀와야 되겠기에 방장산 방향으로 4분 남짓 진행해 올라서니 예전에는 없었던 쓰리봉

 

표시목이 바위사이에 세워져 있어 카메라에 담고 다시금 산하를 뒤덮고 있는 운무의 세상에 빠져들어

 

본다.

 

날씨만 쾌청하다면 고향땅인 부안의 변산반도가 새만금까지 멋지게 조망되면서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할 텐데 운무가 짙게 끼어있어 아쉬움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산꾼의 마음을 울려주는 것 같아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분기점으로 발길을 무겁게 돌리는데 일행들은 저만치 앞서나가고 계신다.


(능선이 좌측으로 꺾이는 지점)

(저 바위를 넘어가면 되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해 우측으로 내려간다/에궁 다리가 괜찮으면 앞서가는데)

(다리가 불편하다보니 정말 떨어져 죽는줄 알았다)

(아까 인지하지 못했던 바위지대에서 내려오는 길을 뒤돌아보니 이렇게 좋네여~~)

(능선이 분기되는 지점으로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가게 된다)

(우직진으로 능선을 다라야 되는데 잡목으로 인해서 잠시 편법을...ㅎㅎㅎ)

(소갈재)

09:47 분기점의 암봉에 올라서니 일행들은 벌써 일부는 앞서 진행하고 일부는 암봉을 내려서고 있는데

 

나도 몸은 부실하지만 관객 없이 연출되는 운해쇼는 감상해야 되겠기에 부실한 몸으로 조심스럽게 암봉에

 

올라가 운해의 늪에 빠져본 후 조심스럽게 암봉을 내려선다.

 

아무튼 그렇게 암봉을 내려서니 잡목이 들어찬 산죽밭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푹푹 빠지는 발걸음을

 

이리저리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6분 남짓 진행하니 좌측으로 큰바위 몇 개가 자리하면서 산죽지대가

 

이어지고 있다.

 

남쪽지방이라서 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스패츠를 놔두고 왔었는데 산죽지대에 빠지는 눈길은 발목을

 

넘어서 등산화 안쪽으로 눈이 들어가 양말이 젖고 시려오는데 바위지대를 뒤로한 2~3분 후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 분기(492m)봉에서 우측의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서게 된다.

 

여기에서 능선을 가늠해보면 꼭 직진으로 이어질 것 같은데 마루금은 우측으로 틀어 조금 내려섰다 다시

 

좌측으로 꺾어 가파르게 내려서게 된다.

 

어쨌거나 분기점에서 그렇게 우측으로 꺾어 1~2분 남짓 내려서니 다시 직진의 내리막길을 버리고 좌측

 

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는 분기점인데 쌓인 눈으로 산길이 가늠되지 않고 바위지대의 가파른 내리막길이

 

위험해 보이는데 고문님께서 앞서가시며 가파른 내리막길을 개척하고 계신다.

 

내겨가서 뒤돌아보니 바위지대의 좌측으로 산길이 자리하는데 우린 그것을 인지하지 못해 바위지대의

 

우측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느라 굽어지지 않는 관절로 죽음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나무를 붙잡아가며

 

힘들게 내려서게 되었다.

 

떨어지거나 나뒹굴어 죽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가며 내려선 탓으로 양말은 축축하게 젖어 발이 시려

 

오고 아픈 관절은 통증이 더해와 다리를 절어가며 능선으로 복귀해 잠시 내려서니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 그곳에서 함께 휴식을 취해가며 고문님이 주시는 그윽한 커피향에 취해보니 다시 생기가

 

되살아나는 듯.

 

다시 행장을 추슬러 잠시 내려섰다 산죽과 잡목이 자리하는 능선을 완만하게 올라섰다 10여분 내려서면

 

능선이 좌측으로 휘어지는 분기점을 대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으로 급하게 꺾어 잡목지대로 내려

 

서게 되는데(지맥분기점으로부터 0.88의 지점) 2분 남짓 내려서면 키 큰 산죽지대의 내리막길이

 

이어지게 된다.

 

다시 5분 후 바위와 함께 소나무가 자리하는 능선을 살며시 올라섰다 20여분 내려서면 소갈재의 임도를

 

대하게 되는데 우리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으로 꺾어 사면으로 내려서게 되었다.

 

그렇게 내려서니 방장산의 설명판이 자리하고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4분 남짓 진행하니 실질적인 소갈재

 

의 임도삼거리를 대하게 된다.


(이 버섯 이름이 뭐라 했는데 머리가 나빠서리...)

(방장산을 뒤돌아보고)

(마루금이 좌측으로 꺾이는 봉)
(좌측 방장산의 능선)

(갓바위봉)

(저렇게 미리도착해 쉬고 있는데 패잔병은 언제나 늦어서 미안합니다)

 

10:32 소갈재를 뒤로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넝쿨지대로 올라서니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자리해 폭신폭신

 

빠지는 발걸음으로 벌목지대를 올라선 후 다시 숲으로 들어서 63번 송전철탑을 가로질러 10여분 진행하니

 

넝쿨지대가 자리해 좌측으로 우회해 뚜렸한 산길이 자리하면서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데 뒤돌아보는

 

방장산의 작태가 그야말로 운해에 휘감겨 멋지게 올려다 보인다.

 

방장산은 정읍 고부의 두승산 그리고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이라고 했다하며 1592년 임진

 

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고창의 방장산의 수려한 산세를 보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경계하여 쇠말뚝 5개를 박아 산의 정기를 차단하려 했으며 일제강점기 때도 쇠말뚝을 박았다하여

 

이를 제거하였다 전해오는 그야말로 고창의 진산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그렇게 방장산의 수려함에 빠져본 후 다시 공터가 자리하는 능선에 올라섰다 좌측으로 꺾어 1

 

남짓 내려서니 시누대밭이 자리하면서 좌측에 이정표목이 자리하는데 지나온 능선방향으로 악곡재:0.5

 

진행방향으로 거담봉: 0.1라 표시되어 있다.

 

절어가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완만하게 거담봉(347.4m)에 올라서면 삼각점이 설치된 가운데 쉼터 의자가

 

자리하는데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계시어 입암산과 갓바위봉 그리고 방장산의 멋진 운해

 

속의 작태에 다시한번 빠져본다. 


(능선 꺾임봉)

(능선 꺾임봉)

(하얀집 뒤에서 직진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뭐하시남유~~)

(또 임도를 따르려다 마루금인 직진의 흙길로 들어섭니다)

(저 앞산이 마루금인 수산정이네요)

 

11:45 가야할 길이 멀기에 10여분 남짓 휴식을 취한 후 살짝 내려섰다 올라서면 우측에 수리봉이라

 

쓰여진 표시목이 자리하고 다시 3분 남짓 진행하면 좌측 아래에 송천철탑이 자리하면서 산길은 좌측으로

 

꺾이면서 임도수준의 솔밭길이 3분 남짓 이어지게 되는데 이후로는 좌측으로 꺾이는 뚜렷한 길을 버리고

 

직진의 능선으로 올라섰다 바로 좌측으로 급하게 꺾어 내려서게 되는데 잡목이 들어찬 소나무 숲이

 

멋지게 이어지기도 한다.

 

마루금은 그렇게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잠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르다 도로가 휘어지는 지점에서 다시

 

좌측의 숲으로 들어서면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자리하면서 울창한 소나무 숲의 임도가 10여분 이어지다

 

우측에 전주이씨 묘지대를 대한 후 3분 후 임도삼거리를 다시 대하게 되는데 6각의 산불감시초소가 높게

 

자리하기도 한다.

 

이쪽 마루금으로는 방장산의 마실길이 개척되어 있는지 중간중간 이정표가 자리하면서 덕화리주민들의

 

부탁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후로는 거저먹는 산길이 이어지게 되는데 나로서는 이것도 버거워 고통을 참아가며 진행하게

 

된다.

 

산불초소를 뒤로한 4분 후 좌측 아래로 하얀집이 자리하면서 마루금은 직진의 숲으로 들어서 진행하게

 

되지만 우리는 편안한 도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벌써 개구리 울음소리가 이따금씩 귓전에 들려와

 

세월의 빠름에 내 인생의 허무함을 잠시 느껴보기도 한다.

 

이 좋은 세상에 좋은 취미를 갖고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줄 그런 산행을 못한다는 것을 한스러워하며

 

이루지 못하는 그리움으로만 바라보아야하는 피멍든 가슴을 잠시 어루만져보며 발걸음을 한발두발

 

내딛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스틱에 의지하며 진행하다보니 일행들이 기다렸다 가기를 반복해

 

미안한 마음만이 내 자신을 더욱 움츠려들게 만드는 것 같다.

 

다시 임도삼거리 갈림길에서 직진의 질퍽한 붉은 황토길을 따라 우측에 조경수농원을 끼고서 3분 남짓

 

진행한 후 다시 시멘트도로를 따라 3분 남짓 내려서면 2차선 포장도로의 군도가 지나는 덕화공설묘원앞에

 

내려서게 된다. 


(좌측으로 들어가 보지만 철조망에 막혀 다시 뒤돌아 나와서 직진의 도로로 내려섭니다)

(목장의 철조망 때문에 못 들어가쥬~~)

(이 철문을 열고서 들어섭니다)

(조심히 넘어가세요...엉덩이 찔리면 아프니께~~)

(누가 이곳에서 고기도 구어먹었네요~~산불 조심해야지~~)

(아이구~~힘들어 죽겠는데 천천히 갑시다~~)

 

12:21 장성갈재에 세워둔 차를 회수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산행을 접고 일부는 송촌까지 차량으로 이동

 

한다하는데 나도 산행을 여기에서 접고 차로 이동할까 망설이는데 그래도 천천히 진행하자는 고문님의

 

말씀에 염치를 무릅쓰고 진행해보기로 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편백나무가 자리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1분 남짓 진행하니 전면 삼거리에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는 석상이 자리하면서 좌측의 목장이 자리하는데 철조망 울타리가 자리해 다시 뒤돌아 내려와

 

도로를 조금 내려서니 좌측의 숲 방향으로 철망문이 자리해 그것을 열고 들어서 5분 남짓 올라서니

 

철조망 울타리가 다시 자리해 조심스럽게 철조망을 넘어가 좌측으로 틀어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올라서니

 

뚜렷한 등산로가 자리하면서 쉼터 의자까지 설치되어 있다.

 

그런 안부에 올라서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서니 산길 좌우로 정성이 듬뿍 담긴 돌탑이

 

자리하면서 안부를 뒤로한 10여분 후 운동시설과 육각정자의 수산정이 자리하는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등산안내표시판에 수산정이라 표시되어 있다.


(송촌버스정류장으로 내려섰네요)

(버스시간 참고하세요)

12:54 이제 이곳만 내려서면 송촌이라 하는데 어떻게 내려설까 걱정이 먼저 앞서기 시작한다.

 

그래도 오르막은 그런대로 진행하겠는데 내리막길은 꼭 죽음의 계곡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수산정을 뒤로하고 임도수준의 뚜렸한 산책로를 따라 내려서는데 발걸음은 더 힘들어 4발로

 

기다시피 절어가며 10여분 내려서니 고문님과 산타래님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쉬었다 가라는데

 

미안한 마음으로 그냥 천천히 진행 하겠다 하며 소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우측 아래로 묘지대가 자리하고

 

다시 좌측으로 묘지대가 자리하는 철책을 빠져나와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임도를 뒤로하고 다시 잡목이 무성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8분 남짓 내려서니 송촌마을 버스정류장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송촌마을은 좌측의 마루금을 따라 휘돌아 내려서야 되지만 다리가 아파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해 아스팔트도로에 내려서 마을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고통이 온몸의 전율을

 

따라 뇌 끝 말초신경까지 퍼져와 걸음마 수준의 발걸음으로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무심이님과 조고문님의

 

사모님께서 맛있는 라면을 맛깔스럽게 끓여놓아 편안하게 점심을 해결하는 것으로 오전 산행을 마무리

 

하고 내고향 부안으로 이동하게 된다. 


14:05 보안면의 유정재로 이동하는 길목 신림 근처에 자리하는 37.3m봉과 삼각점이 설치된 41.4m봉을

 

올랐다 가야하지만 그냥 생략하기로 하고 40여분간의 차량이동으로 유정재에 도착한다.

 

유정재에서 내 본가는 1.5남짓한 거리에 자리하는 유점 마을인데 마을 뒷산인 주산(배멧산)은 석산

 

개발로 흉물스럽게 자리해 어린 시절의 그 동심의 꿈은 온데간데없이

 

상처만이 남겨있어 아쉬움만이 더하게 만든다.

 

이곳에서 만석동 방향으로 약500~600m지점에 아버지의 산소가 자리해 성묘를 하고 진행했으면 하는

 

생각이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번에 들렸다 가기로 하는데 부모님께 불효막심하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아버지께서는 91평생 하늘로 돌아가시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상투에 갓을 쓰신 몸으로 매월 음력 1일과

 

15일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를 찾으셨는데 젊은 놈이 그까지 다리 아픈 핑계로 그냥 지나치다니...

 

농촌에 사시면서도 평생을 짐지게 한번 저보지 않고 진흙의 논 속에 한번 들어 가보지 않으셨던 상투

 

머리에 갓을 쓰신 아버지셨는데 돌아 가신지가 벌써 20여년이 다되어 가나고 내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느낌은.....?


(영전 사거리에서 검문이 실시되고 있네요)

(유관이라는 이름은 유점과 갓점을 합처 부르는 고향의 마을 이름입니다 / 제 고향 마을은 유점이지요)

 

14:32 사창저수지 한쪽에 자리하는 주유소에 차를 주차해두고 맞은편 유성재로 올라서 유씨의 사당앞에서

 

사창저수지 뒤로 펼쳐지는 내 고향마을 뒤돌아본 후 숲길로 들어서 7분 남짓 올라서니 131봉의 능선에

 

올라서게 되는데 구릉지와 같은 곳에 잡목만 무성하게 자리해 뚜렷한 등산로를 따라서 다시 10여분

 

진행하니 마루금 좌측 10여미터 아래(주유소도로부터 0.81지점)에 자리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산소

 

갈림길에 도착되어 조부모님께 성묘를 드리는데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진다.

 

아픈 다리는 그만두고서라도 지난해 관리하지 못한 조부모님의 산소에 웃자라 말라비틀어진 잡풀이 왜

 

그렇게 가슴을 미어지게 만드는지.

 

옛날에는 저 아래에 산직이 집이 자리해 그분들이 산소를 관리해주었지만 아버지와 장형님이 돌아가신

 

이후로 형제들로 연명 붙여진 그 농토를 장조카에게 임대형식으로 넘겨줘 조상님들의 산소를 관리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렇게 방치해두었다니 정말 화가 치밀어 올라와 혈압까지 오르는 것 같다.

 

사실 추석에 고향에 내려와 조상님들께 성묘를 해야 하지만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핑계로 3월과 5

 

봄철 부모님 제사 때 내려와 조상님께 성묘를 하고 돌아가기에 추석 때는 찾아뵙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난해 이렇게 까지...


(석산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저 주산의 절개지 우측 치마바위 아래에는 호랑이 굴이 자리합니다)

(보물찾기)

내가 태어나기 2년전에 들어선 조부모님의 산소인데 그때문에 비석에 내 이름은 없고 또한 창피하네요

(조부모님의 산소 갈림길의 지점 모습)

 

16:05 죄스런 마음으로 성묘를 드리고 마루금으로 올라서 완만하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올라서면 예전

 

전경부대의 막사가 자리하는 271m봉에 올라서게 되는데 좌측 아래로는 예전에 전투경찰부대가 자리했었다.

 

6.25때 이곳은 치열한 전투가 있었고 또 빨갱이들이 많았던 탓으로 전경부대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내가

 

어릴적에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밤에 이곳 부대로 영화를 보러왔었던 기억이다.

 

어쨌든 군초소를 뒤로하고 부터도 산길은 뚜렷하게 이어지게 되는데 10여분 후 우측 저 멀리 울금바위가

 

웅장하게 올려다 보이는 지형도상의 사창재를 대하게 된다.

 

사창재의 임도는 좌측의 만석동으로 이어지게 되며 마루금은 사창재를 뒤로하고 부터도 더욱 뚜렷하게

 

이어지면서 낯익은 산님들의 표시기도 이따금씩 대하게 되는데 그런 길을 5분 남짓 진행하다보면 잠시

 

바위와 잡목 그리고 산죽이 이어지면서 직진의 나지막한 봉을 좌측으로 우회해 내려서게 되는데 그렇게

 

우회해 내려서면 좌측으로 조망바위가 자리하면서 내 본가의 마을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기도 한다.

 

초등학교시절 소풍 왔던 이곳을 예전에 고양이 바위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4분 남짓 내려서면 좌측으로 만석동에서 올라오는 안부를 대하게 되고

 

이어서 산죽지대를 따라서 15분 남짓 진행하면 지형도상 삼각점이 설치된 상여봉(395m)에 올라서게

 

되는데 좌측 아래로 묘지가 자리하면서 그 뒤로 내 고향 뒷산인 주산 우측 아래로 유점의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데 저곳에는 내 어머니의 피땀과 머슴 그리고 일꾼들의 고단한 땀이 많이 흘려있는 그런 농토인데

 

지금은 일부 소작으로 관리하고 있을 뿐... 

 

저 주산(배멧산)에는 예전에 고려장이 많아 고려자기나 옛날 유물들이 많이 나왔었는데 아마도 보안면에

 

도요지가 자리해 그런 그릇들이 많이 발굴된 모양이다.

 

어릴적 형과 함께 산에 올라가 몽둥이나 쇠뭉치로 이곳저곳을 두들겨보면 뭔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

 

고려장이 있을거라 추측하고 나중에 확인해보면 누군가 도굴해간 고려장이 나타나곤 했었다.


(울금바위)

(사창재)

(남포리방면과 상립석리방향으로 조망)

(유정재에서 지나온 마루금)

(저 아래 산직집터와 아버지의 산소를 내려다보면서)

(노승봉 조망)

(의상봉쪽으로 조망)

(상여봉에서)

(상여봉에서 주산방향으로 내 본가를 땡겨본다)

(저 주산(배멧산)에는 예전에 고려장이 많아 고려자기나 옛날 유물들이 많이 나왔었지)

17:03 상여봉을 뒤로하고 11분 남짓 진행하니 묘지1기 자리 잡고 있는 노승봉(352m)을 대하게 되고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어 3분 남짓 더 진행하면 또다시 우측으로 꺾었다 좌측으로 꺾어 산죽지대를 따르게

 

되는데 발걸음은 더욱 무겁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바디재가 가까워진다는 희망으로 6분 남짓 진행하니이라 쓰여 있는 시멘트기둥이 세워진

 

297m봉을 다시 대하게 되어 잡목이 들어찬 좌측으로 꺾어 7분남짓 내려서니 광산김씨 묘지1기가 자리한

 

가운데 자기점(1-17)표석이 세워져 있다.

 

좌측 아래로는 우동리가 내려다보이고 전면으로는 다음 구간인 옥녀봉이 올려다 보이는데 저 옥녀봉은

 

20071201일 초등학교친구들과 우동리에 자리하는 우신마을체험관에서 동창회를 갖다 따분함을

 

털어보고자 지도 한 장과 나침반을 들고서 무작정 체험관을 2332분에 출발해 0024분에 바드재에

 

걸어 올라서 옥녀봉(0054)-용각봉(0200)-반계유적지(0232)-체험관(0244)으로 야간산행

 

을 했던 기억인데 다음날 친구들로부터 무섭지도 않더냐며 미친놈이란 소리를 듣기도 했었는데 그때는

 

산에 미치기도 단단히 미친 시절이었지...

 

아무튼 그런 추억을 회상해보면서 직진으로 내려섰는데 바드재는 절개지로 낙석방지용 철망이 설치되어

 

있어 바로 내려서지 못하고 우측으로 휘돌아 내려서게 되었다.  

(노승봉)

(옥녀봉을 올려다 보면서)

나 때문에 고생하신 고문님을 비롯한 함께하신 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다시 유정재에서 차를 회수한

 

후 부안으로 나가 교회를 운영하시는 형님댁으로 찾아가 저녁식사를 해결하고 서울로 고고씽 한다.

 

다음 구간은 언제 진행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더 좋아진 발걸음으로 진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