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山과 近郊山行記/★명산근교산행

지리산 (거림)

六德(이병구) 2011. 2. 27. 17:16

산행일시: 2003년 8월 16 일

 

얼마 전부터 휴일과 야간을 이용하여 조금씩 나르던 이삿짐을 광복절인 오늘도 늦게까지

나르다 배낭을 챙기어 사당역으로 출발한다.

무박산행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쉬라던 아내의 따뜻한 메시지가 더욱 그립도록 몸은 피로에

지쳐 있으나 그래도 산을 찾는다는 그 낭만과 3개월 후에 새롭게 꾸며질 새 보금자리가

있기에 발걸음은 가벼운 듯 나는 기분이다.

사실 어제부터 지리산 태극종주를 하려 했으나 지리산 산장 예약관계로 태극종주는 취소가

되고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대원사로 하산하는 1무1박3일 지리산 종주로 일정이 바뀌어

버렸다.

그것마저도 산장예약이 되지 않아 세석에서 비박을 하여야 된다니.....l

비박산행을 위하여 여벌옷과 쌀, 반찬, 간식, 우의, 1.5리터 얼음물 등등을 준비하다보니

배낭무게는 따른 때보다도 갑절로 나의 어깨에 하중을 더해준다.

말복 다림으로 조금 마셔두었던 술기운과 피로에 스러져 잠이든 후 일어나보니 성삼재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산악회장이 한마디한다.

산장예약이 일부만 되어 여의치 않으니 비박 준비로 2인 1조가 되어 덮을 비닐과

바닥에 깔 은박지 돛자리를 받아가라고 말이다.

회장은 거림으로 바로 올라가 대기자로 걸어놓은 예약을 성사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사실 말이지 비박은 여간 힘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우리는 비박을 위한 덮을 비닐과 은박지 자리를 받아들고 3시 20분에 성삼재를 출발하여

싸늘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진행하다보니 노고단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정상을 바라보며 약15분 동안 휴식을 취하다보니 바쁜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이 길은 소복이 쌓인 눈길을 아이잰과 스패치한 발걸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는 설산 산행과

어여쁜 여인의 촉촉한 입술인양 분홍빛 철쭉꽃을 바라보며 산행했던 길이 아니던가

그뿐이겠는가 우의를 입고 빗속을 가르며 달리던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의 11시간대의 무박

여름산행과 고귀한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듯 파르르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널널한 가을

산행도 했었던 길인데 오늘은 하늘에 별빛도 총총히 인사를 나눈다.

임걸령을 지나 노루목에 도착하니 반야봉 갈림길이발걸음을 망설이게 한다.

나와 함께 선두대열에 합류한 가른 대원들에게 반야봉을 권하니 어두운데 그냥 가자고하여

약 10분동안 지체하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삼도봉에 도착한다.

삼도봉에 도착하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웠던 하늘이 개벽이라도 하려는 듯이 시뻘건

붉은 수채화 그림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그렇게 삼도봉에서 20여분동안을 감탄과 기쁨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화개재넘어 토끼봉을

힘들게 올려치니 또다시 가파른 통나무 계단이 관절을 노크한다.

명선봉을 올려친 후 연하천산장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하고 연하천

산장은 난민 수용소인양 등산객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나도 배가 고파 꼬르륵 밥을 달라한다.

나 역시도 땅바닥에 앉아 도시락을 먹다보니 약 30여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식사를 끝마치기가 무섭게 냉수로 속을 차린 후 우의를 걸쳐입고 형제봉을지나 벽소령에

도착하니 벽소령역시 발붙일 틈도 없이 등산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쉬는 것을 포기하고서 덕평봉을 올려치고 선비샘에 도착하여 소주 한 모금을 마시고

칠선봉과 명신봉을 올려친후 세석평전으로 12시에 내려서니 세석산장역시 시장통 처럼

아수라장이다.

라면국물에 쐐주를 마시는 그 입술들이 아름다워 보였고 순간 나의 목덜미에서는 군침이

꿀꺽 넘어가다 못해 아쉬움의 쓰디쓴 침샘이 발산된다.

초라한 모습으로 등산객들 사이에 끼어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서 땀과 비로 젖은 모습으로

쭈구리고 앉아 일행들이 도착하기만을 눈꼽아 기다리는데 지친 피로와 자꾸만 떨어지는

체온은 나를 졸음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만들고 강한 빗줄기는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오후 4시가 넘으니 피로에 지친 일행들이 속속 도착하고 5시가 거의 다 되어갈 무렵 부부

인 듯 한 2명이 마지막으로 도착한다.

부상자들과 후미 가이드를 포함한 일행 14명을 세석산장에서 여장을 풀게 하고

내일 아침에 거림에서 우리와 함께 합류해야된다는 말을 주지시키고서 난 부부 2명과

함께 5시 30분쯤 거림을 향해 하산을 한다.

20여분 내려 가다보니 누군가 몹시 고통을 호소하며 산행을 하기에 자초지정을 물어 보니

인대가 늘어나 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픔을 함께 나눌 수는 없어서 비상 조치법을 이야기하고서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왠지

마음이 가볍지를 않아 뒤돌아가 어디에서 왔느냐 물어보니 우리의 일행이다.

아~~! 이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산에서의 일몰시간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는데.....

한참을 함께 내려가다가 먼저 하산한 일행에게 무전을 교신하니 무전이 되질 않는다

그래 핸드폰을 눌러본다.

아불사~~! 모든 통신이 두절이다.

이런 상태로 하산한다면 밤 12시에나 거림에 도착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전혀 내려가지 못할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청옥 두타에서 19시간동안 폭설속에서 사선을 넘나들었던 경험이 있었던 나로 써는 이것이

아니구나 하는 판단을 내리고서 급한 마음으로 4㎞를 뛰다시피 내려간다.

환자와 보조자 그렇게 2명을 남겨두고 말이다.

너덜지대를 더듬더듬 내려오니 늦게 하산하는 몇몇 사람들이 어두운데 랜턴도 없이

왜 그렇게 뛰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랜턴이 없어서 그렇게 더듬더듬 뛰어내린 것은 아니었다.

조금밖에 남지 않은 랜턴의 건전지를 최후의 수단에서 이용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긴장된 마음으로 뛰어 내려오니 무릎과 허리 그리고 어깨가 요절이 난 듯이 통증이

오고 거림 500m 전방쯤 도착하니 핸드폰이 터져 무전기를 오픈 시켜라 하고서 구조를

요청하니 순간적으로 몸에서 힘이 쭉~~빠진다.

온몸이 아픈 나는 산에 오르지 못하고 구조대 몇 명을 올려보낸 후 내려와 저녁을 먹고

밤 11시 50분에 다시 세석을 향해 올라간다.

구조하러 간 사람들이 내려오질 않으니 나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약2㎞ 거리를 올라가니 산악구조대들이 교대로 환자를 엎고 내려오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거림에 내려오니 8월 17일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어간다.

지친 내 몸을 좌석에 내팽개치듯 쓰러뜨린 후 새벽 4시쯤 거림을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아침 8시 30분이다.

오늘도 이렇게 악천후에서 산행을 했구나 생각하니 지나온 산행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짧은 산행경력 속에서 부상자들을 여러번 구출해보고 생사의 갈림길에서의

조난사고도 겪어본 내가 때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자칭 들 때도 있기에.....

모두가 자신의 체력에 맞는 산행을 했으면 한다.

너무나 무리한 산행은 하지 말기를 꼭 당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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