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산행/★백두대간

고치령-마구령-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산행기

六德(이병구) 2011. 2. 27. 14:35

선달산 옥돌봉(옥석산) 산행기<b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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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의 예식관계로 모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새마을호<br><br>
열차에 몸을 싣고 대구를 다녀오니 밤 9시가 다되어간다. <br><br>
머나먼 대구에서 친족들과 기쁨을 함께한 짧은 만남이 눈가에서<br><br>
가시기도 전에 난 어느 때의 토요일과 똑같이 배낭을 챙긴 것이다 <br><br>
토요일이면 되풀이되는 나의 일과이기에.... <br><br>
하루종일 열차에서 수면을 취했으나 그것도 부족한 듯 잠시나마<br><br>
깊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br><br>
오늘(5월 12일) 산행은 원래 도래기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려 했으나<br><br>
특별한 사항이 없어 고치령에서 북진을 하기로 수정했다. <br><br>
2000년 10월 01일 아내와 함께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br><br>
산행했던 고치령! <br><br>
저 멀리 초승달이 영주시 단산면의 산골 좌석리를 희미하게<br><br>
비쳐주고 옥대저수지로 흐르는 맑은 피바위 약수는 차가운 밤기운을<br><br>
타고 산꾼들의 가슴에 울려 퍼지는 적막함을 느끼게 한다. <br><br>
핸드폰의 키 보턴을 눌러 좌석리 김영호 이장님을 조용히 불러본다. <br><br>
우리가 이장님을 찾게된 사연은 다름 아닌 화물차를 이용하기<br><br>
위함이었다. <br><br>
잠시 후 덜컹거리는 낡은 화물차 한 대가 다가온다. <br><br>
여성대원과 고령의 대원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프로정신이 조금<br><br>
가미된 우리 15명은 20여분 후 다음 차를 이용한다. <br><br>
드디어 김영호 이장님의 애마가 울창한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br><br>
흐르는 맑은 계곡수의 안내를 받으며 고치령을 향해 굉음을 토해 낸다. <br><br>
싸늘한 한기는 두빰을 움추리게 만들고, 덜컹덜컹 춤추는 적재함<br><br>
바닥은 홍두께로 두드리듯 엉덩이를 안마하고<br><br>
내몸을 지탱해주는 중심축 허리는 적재함에 꽉 끼어 전자 물질에<br><br>
끌린 듯 꼼짝못하고 붙들어 잡은 손목은 육체파 남성을 상징이라도<br><br>
하려는 듯 근육이 솟아오른다. <br><br>
이 모든 상황이 군복무시절 5분대기조 출동하는 느낌이 들었다.<br><br>
사실 나는 5분대기조 출동은 많이 하지 않았으나 81년도 서부전선에<br><br>
간첩이 침투했을 당시 실전 수색을 나가본적이 있었다.<br><br>
주특기가 보급주특기라서 사단 병참근무대에서 근무한 관계로<br><br>
소총은 그다지 잡아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관계로 실천 투입은<br><br>
간장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것이다.<br><br>
우린 꼬불꼬불한 산길을 그렇게 4㎞를 달려 새벽 4시에 고치령에<br><br>
도착된다. <br><br>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br><br>
있어야할 산신각은 보이질 않고 그곳에 새끼줄만이 자리를 지키고<br><br>
있지 않은가 사연을 이장님에게 물어보고 산행을 시작한다. <br><br>
먼저 출발한 대원들을 따라 잡기 위하여 속도를 더해본다. <br><br>
미끄러지는 마사토를 밟고서 참나무 터널 속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든다.<br><br>
숨바꼭질을 하는 술래처럼 참나무 숲속을 하염없이 달려본다. <br><br>
촉촉이 젖어있는 산길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어 속도내기에는<br><br>
아주 좋았다. <br><br>
한사람 두사람 추월하며 산책로 같이 느껴지는 크고 작은 몇 개의<br><br>
봉오리를 넘나 들다보니 몸에서 열기가 서서히 달구어지기 시작한다.<br><br>
솔바람을 맛보고자 모자를 벗어드니 뜨거운 땀방울이 경주하듯<br><br>
목덜미로 흘러내린다.<br><br>
순간 짜릿한 전율이 가뿐 가슴을 달래어주고 아랫배에서 식욕을<br><br>
느끼게 한다.<br><br>
호주머니에서 빨간 스카프를 꺼내어 흐르는 땀방울을 닦고서<br><br>
잡목지대를 지나 950봉과 877봉을 가볍게 넘은 후 미내치에<br><br>
올라서니 3차 종주대 선발대원 5명이 갈증을 풀고있다.<br><br>
상당히 구불구불한 능선길을 올려치니 전망 좋은 1096봉이<br><br>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하여 우리는<br><br>
1096봉 아래 춘양목지대에서 나를 비롯한 한 대장님, 김용식 형,<br><br>
김선욱 형 이렇게 4명이 아침식사를 나눈다.<br><br>
김선옥형이 가져온 커피를 나누고자 커피포트를 열어보니<br><br>
커피보트는 한겨울의 동장군이 되어있고 그 향만이 우리의<br><br>
입맛을 돋군다.<br><br>
다시금 급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마구령이 달려왔던 길과 가야할<br><br>
길의 거리를 말해주고 수줍은 여인내의 뽀얀 볼처럼 피어오른<br><br>
철쭉꽃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발길을 붙잡아 김선옥형의<br><br>
카메라에 야생화의 흔적을 남겨본다.<br><br>
카메라의 후레쉬가 터지기 무섭게 발걸음을 재촉하다보니<br><br>
갈곶산 봉황산입구 3거리에 도착하니 초등학교 6학년 심민규와<br><br>
그의 아버지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br><br>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는 부석사가 자리잡고 있는 봉황산을<br><br>
갈 수 없는 아쉬움을 카메라에 담고 정북으로 방향을 바꾸어<br><br>
내려서니 늦은목이(해발 약750m)에 아침 08시 40분에 도착된다.<br><br>
김용식형이 발가락이 아파 신발을 벗어 산행을 한다<br><br>
마음이 아파왔다<br><br>
그러나 어절 수 없는 현실을 누구에게 탓하리오....<br><br>
늦은목이에서 20여분에 걸쳐 진한추억을 카메라에 담은<br><br>
후 식수를 보충하여 급오름길을 35분동안 낑낑대며 올라서니<br><br>
선달산(1236m)에 먼저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다보니 잠시 후<br><br>
대원 5명이 도착되고 반대편 방향에서 진행하는 성남의<br><br>
마운틴산악회 대원들이 도망치듯 하나 둘 선달산을 내려선다.<br><br>
우리는 참나무 아래에서 사과하나를 꺼내어 나누어먹고 조금<br><br>
전 마시지 못한 커피를 그곳에서 곁들여 마셔본다.<br><br>
잔디밭산악회에서 세워둔 선달산 표지목에서 포즈를 취한<br><br>
후 고만고만한 봉우리 10여 개를 넘어서 올라온 만큼 내려서니<br><br>
헬기장이 있는 박달령에 11시 30분에 도착하니 어느 가족<br><br>
산행하는 분의 석유곤로 위에서 라면끓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br><br>
자극하여 식욕을 돋게 한다.<br><br>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달령 산신각에서 우리를 대표하여<br><br>
김용식형이 무사기원과 산악회의 발전을 위한 술잔을 올린다.<br><br>
따라 올린 술잔을 그리워하며 급오름길을 있는 힘을 다하여 올려친다.<br><br>
또다시 온몸이 달구어지고 심장은 터질 듯 요동을 치며<br><br>
이마에서는 육수가 비오듯 흘러내린다.<br><br>
옥돌봉! 아내와 함께 가을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추억을<br><br>
쌓았던 곳이 아니던가<br><br>
그 옥돌봉을 향하여 더욱 나의 발걸음을 재촉한다.<br><br>
무릎이 뽀사진 듯 힘없이 1시간여 동안 옥돌봉을 향하여 희생된다.<br><br>
옥돌봉(1241m) 직전 3거리에 도착하니 지난 시절 보지 못했던<br><br>
이정표가 눈에 들어오고 주위에는 대구에서 산행온 일반<br><br>
등산객들이 나물을 채취하다말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진수<br><br>
성찬으로 점심식사를 한다.<br><br>
순간 달콤한 침샘이 분비를 하며 요동을 치는 듯 입맛을 다시게 한다.<br><br>
우측길은 옥돌봉 5분 거리요 좌측은 옥석산 10분 거리란다.<br><br>
옥돌봉이 옥석산이 되고 반대방향의 봉우리가 옥돌봉이 된 모양이다.<br><br>
그래도 지난날의 옥돌봉 표지석이 모진 세월을 이겨내고 나를<br><br>
또다시 반겨주며 왜 혼자 왔느냐 반문한다.<br><br>
소주병을 꺼내어 김선옥형과 김용식형 이렇게 3명이서 한잔의<br><br>
추억을 남기고 반겨주는 철쭉터널을 내려선다.<br><br>
깎아 절벽이 된 도래기재를 조심조심 내려서니 먼저 도착한<br><br>
선발대의 좌판이 펼쳐져 있다.<br><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