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산행/★금남정맥

금남정맥 2구간(싸리재-백암산-서암산-인대산-배티재)

六德(이병구) 2011. 2. 27. 14:14

춘삼월의 매서운 칼바람 타고 금남정맥2구간을 진행한다(싸리재-배티재)

 

산행일시: 2006년 3월 12일(일요당일)

 

동 행 자: 조윤원님과 六德

 

날    씨: 매서운 칼바람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25.3㎞(접속거리:2㎞포함)

 

산행시간: 11시간 50분(휴식시간 포함)

 

산행코스: 중리마을(04:28)-큰싸리재(05:09)-태평봉수대(05:34~42)-자연성벽(05:53)-신선봉/780

 

          (07:39~51)-게목재(07:55)-713.5/선야봉분기(08:16)-육백고지/백암산(09:21)-서암산(09:40)

 

          -백령성(10:06)-백령고개/육백고지전적비(10:10~30)-622.7(11:51)-헬기장/점심(12:20~13:12)

 

         -인대산(13:36)-넓은헬기장(13:55)-시멘트도로(14:25)-459봉/헬기장(14:33)-오항동고개(14:46)

 

         -능선분기봉/500(15:20)-국기봉1920m푯말(15:25)-570봉(15:31~42)-SK이동통신탑(16:07)-

 

         진천김씨묘(16:10)-배티재(16:19)

 

 

산행줄거리:

 

잊을만하면 한번씩 진행하게되는 금남길의 2구간을 또 다시 만 3개월만에 이어가기 위하여 토요일

 

밤 11시에 승용차를 몰고 서부간선도로에 진입하여 철산교 밑에서 조윤원님을 태우고 진안군 주천면

 

중리마을로 향한다.

 

작년 즉, 2005년 6월 12일 부여 백마강을 향해 영취산을 3명이 출발하였는데 함께하는 동행인들의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3회에 걸쳐 2005년 11월 27일 보령고개에 도착(금남호남정맥 마무리)한 후

 

2005년 12월 11일 보령고개를 다시 출발하여 작은 싸리재에 도착하였으나 내 몸의 컨디션이 갑자기

 

좋지 않아 정맥산행을 잠시중단하고 일반산행을 찾다가 만 3개월만에 다시 금남정맥길에 오르다보니

 

중리를 찾아가는 길이 생각나지 않아 금산에서 몇 번을 왔다갔다하다 결국에는 파출소에 들러 길을 물어

 

주천면사무소앞에 도착하니 새벽 3시가 조금 넘는다.

 

주천면사무소주차장의 한쪽 귀퉁이에 주차하고서 차안에서 잠시 수면을 취한 후 아침을 차내에서

 

해결하고 무쏘택시를 불러 중리마을에 도착하니 04:28분이다.(택시비:10,000원)

 

05:09 싸리재임도에서 지난 날머리 구간인 작은싸리재 초입을 찾으려하니 초입을 찾을 수 없어

 

몇 번을 숲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이거 이래가지고 어떻게 정맥길을 찾아갈 수 있으련지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까지 해진다.

 

분명 그 길은 낙엽송이 많은 길로써 등로도 넓은 길 이였었는데.....

 

결국에는 작은싸리재에서 사리봉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임도를 따라 큰싸리재로 오르는데 임도가

 

꾸불꾸불하여 시간이 더 걸리는 느낌이 들고 마음 한 구석은 왠지 아쉬움과 허전함이 채워지는 느낌이다.

 

이럴 바에야 큰싸리재까지 택시로 오를 것을....

 

"그래 이 시간에 싸리봉에 올라 가봐야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또 임도를 따르더라도 물길은 건너지

 

않으니 그냥 마음 편안하게 진행하자"라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 해진다.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아가며 오르다보니 임도 우측에 통신탑이 세워져있는 큰싸리재에 도착된다. 

 

05:34 싸리재 임도를 뒤로하고 잠시 완만하게 능선을 이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가파른 오름길이 숨을

 

헐떡이게 만들고 매섭게 불어대는 칼바람은 손끝을 시리게 만드는데 오늘 처음 신고 온 신발은 발목을

 

죄어 더욱 힘들게 만든다.

 

신발이 발목의 복숭아씨에 걸려 발목놀림이 자유스럽지 못하다보니 가파른 오름길에서 자꾸만 발길이

 

미끄러지고 급기야 정강이까지 당기게 만들다보니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산행 초입에 들어서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힘들게 가파른 오르막을 20여분 올라서니 태평봉수대 갈림길에 올라서게 되고 정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나 어둠 속에서라도 태평봉수대를 오르고자 우측으로 진행하니 돌로 석축해 쌓은

 

태평봉수대에 오르게 되고 그곳에서는 전주시내의 야경이 환상적으로 펼쳐지는데 밝은 낮에는 더 멋진

 

조망을 느낄 수 있겠다 라는 아쉬움을 남겨본다.

 

태평봉수대의 허름한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다.

 

태평봉수대(太平 烽燧台)

 

전라북도 기념물 제36호,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 위치

 

"봉수대는 군사적 목적에 의해 세운 것으로 위급할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신호하여 위급을

 

전하는 옛날의 통신수단이었다.

 

이 봉수대는 해발 803m의 고지 정상에 위치하며 남쪽의 남원 고달산과 동쪽의 나,제 국경선상의 장수

 

장안산 방면에서 이어받아 완주 운주 천등산 방면에 연결한 삼국시대 군사상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고문헌에 의하면 주위가 17간(30.6M)이며 높이간 3간(5.4M)의 방형 축대라 하였으며 지금도 거의

 

원형으로 남아 전한다"라 쓰여있다.

 

봉수대에서의 막힘 없는 조망을 즐기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태평봉수대를 뒤로하고 다시 갈림길로

 

발길을 돌린다.

(태평봉수대)
 
07:39 다시 봉수대 삼거리로 뒤돌아 나와서 능선을 따르니 좌측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자연성벽의 암릉이 어둠에 이어져 내려다보니 몸이 으스스 떨려오는 느낌이 든다.
 
이곳 또한 밝은 낮에 진행하면 더욱 멋진 조망을 즐기고 갈 수 있는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고
 
진행하다보니 산죽지대가 잠시 이어지고 이어서 내리막길에는 산죽 터널을 바져나가게 된다.
 
그렇게 산죽터널을 빠져나와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면 안부에 내려서게 되는데 주변이 구릉지
 
비슷하게 어수선하고 임도 비슷한 길을 가로지르게 된다.
 
잠시 낙엽송지대를 따라 진행하다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다보니 날이 서서히 밝아보기 시작하여
 
랜턴을 끄고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데 여전히 발걸음이 편치 않아 엉거주춤한 상태로 가파른
 
능선을 올려친다.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고집으로 신발을 바꿔신고 왔더니 이 고생을
 
하는 모양이다 라는 푸념을 떨며 능선에 올라서니 어느덧 동녘은 훤하게 밝아져 주위가 조망되기
 
시작한다.
 
우측 저 아래로는 태권도공원을 유치하다 실패한 무릉리가 내려다보이고 좌측 저 너머 칠백이고지
 
산줄기로는 산사태가 났는지 아님 벌목하느라 임도를 개설했는지 지형이 어수선하게 망가져 보여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자연성벽의 암릉길)
(첫번째 대하는 산죽터널)
(좌측 너머로 칠백고지의 산자락)
(일출은 시작됐고)
(지나온 능선/좌측 끝은 태평봉수대)
 
 
어쨌든 이제부터는 큰 고도차가 없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니 발목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쉽게 진행할 수 있겠다 라는 위안을 삼으며 능선을 따른다.
 
그렇게 짧은 바위지대가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서니 칼바람은 매섭게 불지만 뒤돌아보는 능선과
 
좌측전방 저 멀리로 대둔산과 천둥산이 시야에 들어와 조망을 카메라에 담고자 카메라의 셧다를
 
누르며 진행하는데 그 짧은 바위지대에서 나도 모르게 그만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찍고 오른쪽
 
손바닥 엄지손가락 위에 찰과상을 두 군데 당하고 만다.
 
젠장!!
 
지난주에 비학산에서 무사기원제도 지냈는데 이렇게 신발 때문에 첫 산행부터 실수를 범하고 말다니...
 
그래 올 한해 진행하게될 산행에 있어서 이걸로 액땜한 걸로 생각하자.
 
손바닥 껍질이 홀랑 벗겨져 흐르는 피를 지혈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또 다시 키를 덮는
 
산죽터널이 이어져 그걸 빠져나와 잠시 호젓하게 진행하다보니 앞의 봉하나를 오르니 우측사면으로
 
우회하는 길이 나타나 봉을 오를까 망설이다 그냥 우회 길을 택하여 잠시 내려선다.(06시:55분)
 
그렇게 안부에 내려섰다 다시 날등을 따르다 암릉지대를 지나 큰 고도차 없이 능선이 분기하는
 
780봉에 오르니 신선봉이란 푯말이 나무에 걸려있고 우측으로는 무릉원 방향, 지나온 방향으로는
 
운장산, 좌측 아래로는 백암산이라고 표시되어있고 예원대학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란 표시판도
 
함께 걸려있다.
 
조윤원님께서 잠시 휴식을 취하자하여 조윤원님이 가져온 딸기를 꺼내어 먹으며 휴식을 취하다
 
상처부위를 리본으로 다시 묶는데 손바닥이라서 묶기가 여의치 않아 그냥 장갑을 끼고 다시 출발을
 
서두른다.
(좌측 끝 천둥산/ 우측 대둔산이 조망된다)
(전방에 천둥산이 웅장해 보인다)
(지나온 마루금/좌측 끝 태평봉수대)
08:16 오후 4시까지 배티재까지 도착하기로 계획한 터라 짧은 휴식을 접고 가파르게 좌측으로
 
4분 내려서니 게목재(639m)의 이정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우측으로 내려서면 무릉리 민박마을로 내려서게 되고 좌측으로는 고당리로 이어지게 되며
 
이제 육백고지를 향해 짧은 오름을 극복해야 한다.
 
여전히 칼바람은 매섭게 불어대지만 굴곡 없는 편안한 능선이 이어지니 널널한 기분으로 게목재
 
에서부터 20여분 진행하니 조그마한 공터에 삼각점(금산-459)이 박혀있는 선야봉 분기봉(713.5)에
 
오르게된다.
09:21 좌측으로는 선야봉(758.7)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그쪽 방향으로도 많은 리본이 달려있는 것을
 
보면 일반산행으로도 자주 찾는 길인 듯 싶다.
 
여기에서 정맥의 마루금은 우측능선을 따라야 한다.
 
우측으로 내려서 약5분 정도 진행하니 멋진 암릉지대가 펼쳐지고 분재와 같은 소나무가 암릉길에
 
보기 좋게 서있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좌측으로는 선야봉이 잡힐 듯이 다가와 있고 막힘 없는 조망이 또 한번 멋지게 펼쳐진다.
 
언제 지나왔는지 지나온 능선들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좌측 전방으로는 여전히 천둥산과 대둔산이
 
웅장하게 웅장하게 조망된다.
 
이어서 남이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700고지정상가는길, 입석가는길, 건천리휴양림가는길, 정상가는길”
 
표시판을 두 번 대하고 좌측으로 상괴목동 우측으로 백암으로 이어지는 안부를 지나 헬기장에
 
올라서니 저 앞으로는 흰 바위로 이뤄진 육백고지의 백암산이 빨리 오라는 듯 웅장해 보인다.
 
우측 백암방향으로는 깎아지른 듯 절벽을 이루고 있는 암릉을 바라보며 암릉을 올라서니 남이의용
 
소방대에서 “3번 백암.입석가는길, 육백고지정상, 전적비하산길”이라 쓴 이정표만이 세워져 있는
 
육백고지(백암산)에 도착되는데 지자체에서 정상석 하나 세워두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정말 멋진 조망이 펼쳐지고 암릉까지 이어지니 행운을 잡은 듯 한 느낌이다.
(713.5봉의 삼각점)
(좌측의 선야봉)
(좌측의 선야봉)
(뒤로보이는 선야봉 분기봉/713.5봉)
(지나온 713.5봉)
(좌측의 선야봉)
(저 앞에 육백고지의 백암산)
(직진의 육백고지의 백암산)
(육백고지의 백암산)
 
09:40 저 아래 우측 전방으로 내려다보이는 백령고개와 직진의 서암산 암릉을 바라보며 백암산을
 
뒤로하고 잡목터널을 빠져나오니 헬기장(505-6-17)헬기장에 내려서게 되고 12분 후 서암산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따라 서암산에 오르게된다.
 
암릉길에는 밧줄도 설치되어있어 바람만 잠잠하고 시간적인 여유만 있다면 멋진 조망을 더욱 만끽하고
 
갈텐데..라는 아쉬움을 남겨본다.
(지나온 마루금/좌측 끝의 전 태평봉수대)
(서암산)
 
10:06 남이의용소방대에서 설치한 이정표 2번을 끝으로 직진의 길을 버리고 우측의 600고지전적비.
 
하산길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선다.
 
그렇게 10여분 조금더 내려서니 능선이분기하는 곳에 내려서게 되고 여기에서는 직진의 길을 버리고
 
좌측으로 다시 가파르게 내려서는데 꼭 계곡으로 내려서는 듯한 기분이 들지만 가만히 지형을
 
살펴보면 백령성으로 이어지는 능선임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내리막길을 내려섰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면 헬기장에 오르게되고 이어서 복원 중에 있는
 
백령성을 대하게된다.
 
“백령성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선야봉의 동쪽에 있으며 둘레가 약 207m에 이르는 백제의 테뫼식
 
산성”이라 하며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규모는 외벽은 7m, 내벽은 3m정도이고 성벽의 상부 너비는
 
4m정도인데 남문은 백제시대 산성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다락문식(현문식) 구조를 하고 있다한다.
 
또한 금산의 백령성은 조사결과 백제시대 말기에 견휜이 궁예의 남진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다한다.
(백령성)
(백령성)
 
10:10 다시 백령성을 넘어 내려서니 600고지 전승탑이 세워져있어 간식을 먹고 가기로 한다.
 
이곳 해발 육백고지는 6.25사변 후 괴뢰군 패잔병들이 인접 대둔산, 운장산 지역과 멀리로는 덕유산
 
지리산을 거점으로 삼아 출몰하던 공비들까지 지휘하던 세력들이 숨어 양민을 학살하고 식량과 가축을
 
약탈함은 물론 민가를 방화하고 경찰관서까지 습격하는 천인공노할 짖을 자행해 경찰, 군인,
 
향토청장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9.28수복과 동시에 약5년 반 동안 공비 토벌작전을 감행 수백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여 적 사살: 2287명, 생포:1025명과 중화기 탄약등 다수의 전리품을
 
노획하였고 우군에 포위된 잔당들은 병사, 아사, 동사 귀순 등으로 완전 소탕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곳이라 한다.
 
전승탑 아래로는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635지방도가 좌측의 금산과 진산에서 우측의 주천과
 
피암목재로 이어지며 도로정상의 넓은 공터 좌측 구석에는 팔각정까지 세워져 있으며 많은 차들이
 
수시로 통행하는 지방도로이다.
 
보령고개에서 빡센 산행으로 길게 한다면 이곳까지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으로 판단되어 이곳까지
 
한 구간을 끊어도 무방하리라 생각되어진다.
 
어쨌든 그건 각자의 산행속도에 따른 희망사항이고 빵으로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인대산을 향해
 
또 다시 출발을 서두른다.
(백령고개)
11:51 백령고개를 가로질러 절개지를 오르니 좌측에 이동통신시설물이 자리하고 완만하게 능선을
 
이어가게된다.
 
그렇게 완만한 능선을 약25분 정도 따르다 가파른 능선을 올려치니 암릉지대를 대하게되고 저 멀리
 
대둔산이 웅장하게 또 다시 조망되기 시작한다.
 
다시 잠시 내려섰다 또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좌측으로 울창한 낙엽송지대가 이어지고 그 아래로는
 
상개직으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가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데 민가 한 채 자리하는 듯 하고 그 주위로는
 
벌통과 같은 하얀 통들이 널려있어 보인다.
 
무더운 여름철에 이 구간을 지날 때는 아마 그곳에 내려가면 식수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낙엽송 지대를 빠져나오니 완만한 능선길에 밋밋한 묘지가 자리하고 다시 가파른 능선을 헉헉거리며
 
올려친다.
 
그렇게 가파른 능선을 두 고비 넘어 올라서면 마루금은 좌측의 능선을 따르게 되는 610봉이다.
 
일행을 잠시 기다렸다 좌측의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돌멩이가 박혀있는 622.7m봉에 올라서게 되고
 
삼각점(304-복구, 건설부-749)이 박혀있다.
 
여기에서 좌측의 길은 진흥광산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정맥의 마루금은 우측으로 이어가게 된다.
 
지나온 능선을 잠시 뒤돌아본 후 우측의 능선을 완만하게 따라 진행하니 좌측으로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니 등로 좌측으로 참나무를 엮어 만든 평상이 있는데 다 낡아 그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는
 
힘들겠다.
 
다시 완만한 능선을 6분 진행하니 넓은 헬기장이 자리하여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계획으로는 인대산에 올라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칼바람이 너무 매섭게 불어대 바람을 피해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여기에서 점심을.../전방의 인대산에서 좌측으로 진행)
 
13:36 바로 앞에 솟아있는 인대산을 바라보며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니 52분이 훌쩍
 
지나가 또 다시 갈 길을 재촉하여 출발을 서두른다.
 
또 다시 완만하게 진행하다 마지막 가파르게 올라서면 인대산에 오르게되고 정맥의 마루금은 인대산
 
정상 직전에 좌측으로 다시 꺾어 내려가게 되지만 인대산에 올라보기로 한다.
 
인대산에 오르니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지고 고산준봉들이 파도 타듯 출렁이며 폐부 깊숙이
 
상큼한 봄기운을 전해주는 듯 해진다.
 
인대산에서 직진으로 조금 지나치면 헬기장이 하나 자리하는데 그 헬기장에서 막힘 없는 조망을
 
또 다시 한번 만끽 해본다.
 
진산면과 금성면 일대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인대산의 헬기장)
 
13:55 헬기장에서 인대상 정상으로 뒤돌아가 우측의 가파른 내리막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서 진행하니
 
잡풀이 우거진 공터가 자리하고 3분더 진행하면 넓은 헬기장이 자리하고 대둔산이 더욱 가까워 보인다.
 
좌측으로는 조금전 점심식사를 했던 헬기장도 잡힐 듯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14:25 대둔산을 바라보며 큰 굴곡 없이 능선을 따르다 십자로 안부에 내려섰다 다시 봉을 오르는
 
되풀이를 반복하다보니 우측 아래로는 정맥의 마루금을 향해 야금야금 파 들어오고 있는 채석장이
 
자리한다.
 
마루금이 훼손돼 가는 현장을 목격하며 직진으로 내려서니 시멘트도로가 가로지르는 오항동고개에
 
내려서게 되고 마루금은 직진의 459봉을 올랐다 우측으로 내려서 산벗꽃동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14:33 시멘트 도로를 가로질러 직진의 통나무계단을 올라서니 등로에 이끼 낀 삼각점이 박혀있고
 
가파르게 오르게 되는데 정맥의 마루금은 459봉의 헬기장 직전에서 우측으로 내려가게 되나 459봉을
 
향해 오른다.
 
그렇게 가파르게 459봉에 오르니 넓은 헬기장(505-6-3)이 자리하고 그 뒤로 파란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한다.
 
459봉의 헬기장에서 또 다시 막힘 없는 조망을 만끽해본다.
 
발 아래로는 625지방도가 구불구불 펼쳐지고 저 앞으로는 대둔산이 더욱 웅장하게 조망이 펼쳐진다.
(459봉의 505-6-3헬기장)
(459봉에서 내려다본 오항동고개)
14:46 헬기장을 뒤로하고 가파른 능선을 조심스럽게 내려서 시멘트 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전신주가
 
세워진 갈림길에서 표시기가 직진의 소나무 숲으로 매달려 있으나 곧바로 시멘트도로로 다시 내려오게
 
되어 그냥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서니 팔각정이 세워진 오항동고개에 내려서게되고 산벗꽃이란
 
푯말이 떨어져 그네를 타고 있다.
(오항동 고개의 팔각정자)
15:31 오항동 고개의 625지방도로를 가로질러 팔각정자를 우측에 두고 통나무 계단을 오르니 넓은 등로
 
좌우로 벚나무들이 보기 좋게 줄지어 서있고 호젓하게 10여분 진행하니 바위 두 개다 마루금 좌우로
 
세워져 그 사이를 통과한 후 밋밋한 묘지 1기를 또다시 통과하니 진달래나무가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뜨릴 듯 봄기운을 가득 품고 있다.
 
완연한 봄이 찾아온 듯 마루금에는 이따금씩 파릇파릇한 풀잎과 노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생강나무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주고 우측 저 멀리로는 인삼밭이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완만하게 이어지던 마루금은 서서히 가파르게 이어지고 약 500m봉인 듯한 봉의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으나 직진으로 힘들게 올라서니 공터에 비닐만이 묶여져 팔랑이고 있다.
 
여기에서 마루금은 우측의 528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버리고 좌측으로 내려서야 한다.
 
좌측으로 내려서니 조금전 우회 길과 다시 합류하게되고 직진으로 완만하게 오르니 마루금 우측에
 
국기봉1020m지점이란 푯말이 박혀있고 6분더 진행하여 완만하게 오르면 시야가 확~트이는 570봉의
 
공터에 오르게된다.
 
우측 전면으로 대둔산이 17번 국도가 가로지르고 그 뒤로는 대둔산의 전모가 막힘 없이 조망되어
 
넋을 잃은 듯 한동안 풍광에 사로잡혀본다.
 
대둔산을 몇 번 올라봤으나 그때는 대둔산 밑에서 바로 올랐기에 대둔산의 전모를 봐라보지는
 
못했었는데 오늘은 그야말로 행운을 잡은 듯 멋진 조망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10여분을 기다려도 일행이 오지 않아 왔던 길을 조금 내려가 머리를 내밀고 바라보니 일행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오며 500봉의 우회로에서 잠시 혼동을 하여 늦었다 한다.
(약 500봉 정상/
16:07 삼각점이 박혀있는 좌측의 592봉 방향으로도 국기봉이란 푯말이 박혀있는데 어딜 국기봉이라
 
부르는지 궁금한 마음을 접고 우측방향으로 틀어 뚝 떨어져 내려간다.
 
마루금이 그렇듯이 이제는 오르막이 없겠지 하였는데 그렇게 가파르게 내려선 마루금은 또다시 완만하게
 
올라 방향을 우측으로 서서히 틀다보면 우측에는 파란물통4~5개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고 좌측 아래로는
 
국방색의 이통통신 시설물과 통신탑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서 마루금은 우측의 진산자연휴양림 방향이 아닌 좌측의 이동통신탑 방향으로 꺾어 진행하게 된다.
(또 한달 후에나 이곳을 찾게 되겠지...)
16:19 그렇게 좌측으로 꺾어 진행하면 우측 아래로는 휴양림 진입도로가 내려다보이고 직진의 길에는
 
김천김씨 묘지 1기가 마루금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그 뒤로 마지막 작은 봉우리가 한번 더 인내심을
 
요구한다.
 
작은봉 한고비를 넘어 휴게소 좌측으로 내려서면 이치전적지 안내판이 세워져있는 17번 국도인 배티재에
 
도착됨으로써 금남정맥 2구간을 마무리하게된다.
 
이제 부여 백마강까지는 4구간 남은 금남정맥 길의 다음차 산행은 일행의 사정으로 인하여 또다시
 
1달 후에나 진행하게 될 것 같다.
 
어쨌든 계획보다 20분 늦은 시간에 산행을 끝내고 우측의 진산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묵산1리
 
버스정류장이 있으나 버스시간을 몰라 진산개인택시를 불러 금산터미널에 도착하니 미터기요금
 
15,000원이 나오고 주천 진안행 직행버스가 17시 50분에 있어 일행은 금산에서 목욕하라하고 혼자
 
직행버스를 타고 주천으로 달려가 차를 회수하여 다시 금산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소통이
 
원활한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조금 넘어선 시간이다.
(쓸쓸하게 주천면사무소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달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