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산행/★백두대간

아내와 함께한 지리산(음정에서-성삼재

六德(이병구) 2011. 2. 27. 14:28

몇일 전부터 아내를 졸라댄 덕분에 오늘은 아내와 함께 지리산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시절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손에 들고 노란 풍선을 불어가며 소풍가던 동심의 세계처럼 나는 설레는 마음을 달래가며 배낭을 꾸리고 아내는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시작한다.
백두대간 1차종주 시절 아내는 뭐라도 먹고 가자고 하면 그때마다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앞으로 줄다름치는 바람에 아내는 허기진 배를 참아가며 많이도 고생을 했었지..
오늘은 그런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가며 배낭을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배낭에는 도시락과 포도주를 넣고, 아내의 배낭에는 언제라도 꺼내어 먹을 수 있는 포도, 귤, 포도즙, 미숫가루와 내 마음의 미소를 가득 가득 넣어 꾸렸다.
아내가 화장을 끝마치고 일어설 무렵 삼국지를 통달하고서 나이에 맞지 않게 매일 매일 군사를 그리며 전투에 여념이 없는 막내녀석이 뼈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엄마 나는 엄마가 화장하지 않은 모습이 참 예뻐요"라고 말하고 녀석은 침실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 동안 엄마가 무박 산행에 나설 때면 화장을 하였기에 또 산행에 나서는 엄마가 참 미웠나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겨울 폭설로 인하여 우리 아내와 두 녀석은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기에
그 뒤로 아내는 우리 둘이서 무박산행을 다니다보면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가 닥쳤을 때 두 녀석이 고아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무박산행을 외면하여왔던 터라서...
막내녀석의 그 한마디에 아내는 또다시 망설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아들녀석과 아내에게 다시 약조를 한다.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을 아쉬워하며 파르르 떨고있는 나뭇가지의 처량한 마음처럼...
새 생명이 용트림하는 내년 봄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그 한마디 소식을 전하고 강남으로 떠나는 제비처럼 우리 아내도 이제 무박 산행에 있어서는 깊고 깊은 겨울잠을 준비하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든다.
아들 녀석에게 설득 겸 집안 일을 부탁하고서 홍대전철역에서 전철을 타고 신도림역에 도착하니 21시 50분이다.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신호등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우리를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한다.
나보다는 오랜만에 출정하는 내 아내를 더욱 반갑게 맞이하는 듯...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우리는 하루 밤의 안식처를 찾는다.
차안에서는 모두들 잠을 청하기 위해 소등을 했지만 오랜만에 무박산행에 나선 아내는 잠 자리가 못내 불편한 듯 몸을 뒤적 뒤적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아파 왔고 그러다 보니 차는 어느덧 음정에 도착했다.
음정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보슬비가 내린다
어느 때 같으면 별무리들이 머리 위에서 떼지어서 서로들 정답게 이야기하며 나를 반기어 줄턴데...
가랑비를 맞으며 벽소령을 향하여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를 지나니 급 오름세 길로 숨결이 목까지 넘어 오더니 다시금 벽소령을 향하는 군사도로가 나온다.
아마 이 도로는 지리산 빨갱이를 토벌할 때 만든 도로로 추정이 된다.
가을밤 새벽에 내리는 가랑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속도를 더해 본다.
이윽고 선두 6명이 먼저 벽소령에 도착한다.
나는 후미 대원들의 안내를 위하여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나를 제외한 대원4명과 아내를 김수근형님께 부탁하고 먼저 연하천 산장으로 출발시켰다.
잠시 후 대원들이 하나 둘 속속 도착하기에 길을 안내하고서 나는 다시 선두를 잡기 위하여 비에 젖은 크고 작은 돌덩이 너덜지대를 징검다리 삼아 조심스럽게 달리다보니 암봉인 형제봉에 도달한다.
형제봉을 막 내려설 무렵 뒤에서 누군가 외마디 길을 물어와 손전등으로 안내를 한 후 형제봉을 뒤로하고 달리다보니 삼각고지 직전에 음정과 와운으로 빠지는 삼거리에 도착된다.
지난 8월에 삼도산악회를 통한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무박 종주를 강행했던 나로서는 우측 산죽 밭으로 빠지면 음정과 와운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사전에 숙지하였기에 좌측능선을 따라 다시 달렸다.
온몸이 땀과 가랑비에 젖어 범벅이 되고 모자의 창에서는 초가집에서 내리는 낙수 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선두는 지금 어디쯤 가고있을까? 내가 늦으면 아내가 아침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니 주인 잘못 만난 두 다리에서 다시 힘이 솟는다.
이윽고 연하천 산장 철조망을 돌아서니 아내가 연하천산장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이제 우리 신랑 왔으니 나 밥 안 주어도 돼요"라고
도시락을 가지고 있는 내가 없으니 대원들이 장난친 모양이다.
대원들이 떡, 영양밥, 빵, 잣, 호도 등을 꺼내 놓으니 진수성찬이다
우리 부부는 도시락을 가져온 관계로 도시락을 펼쳐놓고 된장에 고추를 찍어먹는다.
초등학교시절 학교에 같다와 부엌에 앉아 찬밥에 물 말아 된장에 고추를 찍어먹던 그 맛이 살아나는 듯 싶다.
그 시절!
우리 어머니는 항상 농사일에 바빠 일손이 부족한 터라서...
난 우리 집에서 3㎞ 밖에 있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석대문과 부엌문을 활짝 열어 재끼고 부엌으로 달려가 부엌 찬장 마루에 앉아 혼자서 밥을 차려먹어야 했었다.
그리곤 등지게를 지고 소꼴을 찾아 이 논두렁 저 논두렁 돌아다니면
부자집 꼬마둥이 머슴 키 안 큰다고 동네 아저씨들이 말렸었는데......

아내가 다른 대원들에게 고추에 된장을 찍어 밥을 권한다.
내 입에도 한술 권했으면..... 쩝 쩝 쩝
조금은 서운했다.
연하천산장의 시원한 샘물을 한바가지 꿀꺽 꿀꺽 마신 후 다시금 선두 대열을 갖추어 토끼봉, 화개재, 반야봉, 삼도봉, 임걸령, 돼지령, 노고단산장, 종석대, 성삼재를 향하여 달린다.
뱀사골산장 쪽에서 간간이 우산을 쓰고 오는 타 산악회 산꾼들이 여간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우산을 쓴 사람, 우의를 펄럭이며 달리는 사람, 무법자인양 무질서하게 등산로를 활보하는 사람, 몰상식한 산사람들...
명선봉에서 내려왔던 고도를 채우기 위하여 땀과 빗물로 얼룩진 얼굴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나무 계단을 힘들게 오르다보니 토끼봉이란 나무 푯말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가랑비를 무릅쓰고 아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찰깍하고서 또다시 빗속을 달린다
그 옛날 어느 가수의 가사를 생각하면서 빗속을 아내와 함께 걷다보니 반야봉으로 오르는 삼거리가 나온다.
반야봉은 백두대간에 속하지 않지만 우린 지리산맥의 장엄한
위용을 보고자 반야봉을 오르기로 사전에 지침을 받은 상태다.
반야봉을 힘겹게 으르다 보니 삼도봉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그 곳엔 조금 전 나와 아내가 사진을 찍을 때 앞질러 나아간
김수근형님 일행 4명이 간식을 먹고 계신다.
우린 다시 합류하여 반야봉을 오르기 시작한다.
철계단을 지나 오르다 보니 반야봉 돌탑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저 멀리 만복대, 정령치, 봉화산... 지리산맥의 산야와
광야가 한눈에 들어와야 할 반야봉이 오늘은 운무에 쌓여
애처롭게 울고있는 것이 아닌가
아!!! 애답기도 하여라 !
그 피비린내 나는 토벌작전의 애환을 연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나는 넓고 넓은 산야를 조망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반야봉
나무푯말을 배경으로 대원들 한사람 한사람 기념사진을 찍어
주곤 돌탑아래 철쭉 밭을 찾아 충견(忠犬)의 영역표시처럼
나도 영역을 표시하곤 저 멀리 애환을 담아 재 넘어가는
운무에 "六德이 왔다 가노라" 안부를 전하고 올라왔던 길을
아쉽게 뒤로 재촉해보지만 반야봉이 떠나는 우리 일행의
걸음을 잡아당기는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발걸음을 잡아당기는 반야봉의 흡인력으로 인하여 아내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소연한다.
아내는 지난 6월 설악산 황철봉의 너덜지대를 지나다 무릎을 다쳐
장거리산행에 있어서는 항상 내려가는 길에서는 무릎을 조심하였는데...
지난 10월 16일 설악산 대청봉 단풍구경에서 선두를 서다가 또다시
아픔을 느꼈다한다.
내려오는 길에 김수근형님이 뿌려주신 에어파스의 효능을 받아
가파른 암봉을 또다시 오르니 삼도봉 삼각표시기가 가랑비 속에
우뚝 솟아 자리를 잡고 화합을 위한 만남의 쉼터임을 말해준다.
기념촬영을 하려했으나 일반 등산객들의 무질서한 행동으로 인하여
촬영을 할 수 없어 모든 기대치를 운무에 날려버리고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그리고 경상남도를 한걸음에 내리찍고서
춥고 피곤한 몸을 달래가며 노고단을 향하여 계속 항해를 한다.
노고단을 오를 수 없음이 현실이면서도 그를 아쉬워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노고단휴게소에는 일일 산행코스로 올라온 일반등산객들이 운집하여
시장바닥을 방불케 한다.
우린 노고단휴게소를 그냥 지나치고 진군을 계속한다.
조금 내려가니 지난 7월에 덕유산악회를 따라 화엄사에서
올라온 코재에 도착된다.
그 때에도 나는 화엄사에서 주촌리까지 산행할 때에 비를 맞았다
가랑비가 아닌 폭우를 맞으며 화엄사에서 2시간만에 코재를
올라와서 저 앞에 보이는 간이 화장실에서 내리는 비를 피하며
아내가 정성스럽게 싸준 주먹밥과 단무지를 먹고 종석대로
올라간 추억이 되살아나 나의 뇌리를 스친다.
선두에서 함께 고생한 이름 모를 2명의 대원이 있었는데...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하며 지나치니 성삼재에
12시 28분에 도착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버스를 찾았으나 문이 잠겨있다.
휴대폰으로 기사님을 찾은 후 빗물과 땀에 찌든 여장을 풀고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이화영팀장이다.
길을 잘못들어 8명이 택시를 타고 오는 중이니
후미에 있는 대장에게 전해 달라한다.
대원 8명이 아마 삼각고지 직전에서 산죽밭으로 떨어졌을
거라 생각하고 대장에게 교신을 하지만 연락이 되질 않는다.
114안내에 연하천산장의 전화를 물은 후 산장지기에게
안내방송을 부탁하였으나 없다한다.
우리가 내려온 3시간 뒤에 대장을 포함한 3명이 무사히
도착하여 비 내리는 지리산의 산행을 마감할 수 있었다.
내년 봄까지는 나홀로..........
아.........
그리운 님이여!........
2002.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