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9정맥산행/★백두대간

흑염소의 운명은...(사치재→봉화산→깃대봉→월경산→중재)

六德(이병구) 2011. 2. 27. 14:22

사치재→시리봉안부→아막성터→복성이재→치재→다리재→봉화산→깃대봉→광대치→월경산→중재→중기마을 16KM, 실재 20KM,를 종주하기 위하여 아내의 마음이 가득 담긴 도시락과 포도주 2병을 배낭에 담아 신도림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인원이 오버되었다고 한다.
그럼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별수없이 나는 버스 출입문 계단에 쪼그려 앉아 가기로 결심하였다
바닥 깔판이라도 있으면 통로에 앉아 갈수 있을텐데... 라는 생각이 이따금씩 머리를 스친다
아실재(사치재)에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소음 속에 하나라는 출발 번호를 뒤로 남기고 697봉을 치고 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대원 한명이 나를 앞질러 달려간다
뭐가 그렇게 급하기에 나를 앞질러 가는지... 나도 저렇게 강인한 체력을 가질 수 있다면....
달빛에 어렴풋이 보이는 허허벌판 속에 억새풀이 나의 발길을 붙잡는다
억새풀 속에는 산불로 인하여 타다 남은 소나무들이 간간히 애처롭게 누워 나의 발길을 붙잡고 하소연한다.
그대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서....
불씨의 영혼이 살아나듯이....
억새풀을 헤치며 이리저리 등산로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이럴 때는 키라도....
그런데 내 앞을 추월하여 달리던 대원이 길을 잘못 들어 고생한 모양이다.
1차 종주 때 나도 그러한 경험이 있지
고생 끝에 시리봉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니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2M가 넘는 철쭉들이 터널을 만들어 나를 보호한다.
2시간여 동안 철쭉과 시름을 하고 빠져 나왔다
870M봉을 거의 다 올라갈 무렵 왼쪽 억새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혹시... 살짝보니 검정색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퍼진다
아니 산속에 왠 흑염소 한 마리가
나의 머리가 갑자기 혼동되기 시작한다
고슴도치, 토끼, 노루 멧돼지의 흔적은 여러번 보았으나 흑염소를 발견하기는 처음이다
이 흑염소는 인근의 목장에서 가출한 것이 틀림없다
생각 같아선 보신용으로 .......

봉황산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니 산청, 함양쪽은 운해를 이루고 있었다
천왕봉에서 밀려오는 바람이 살랑살랑 거리고 억새풀은 어쩜 어여쁜 여인의 몸매를 연상케한다.
그 순간 18세 소녀가 가느다란 긴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억새풀 속으로 달려간다
그 뒤를 나는 맨발로 사쁜사쁜 달려가 그녀의 목덜미를 가볍게 감싸 안고 억새풀 위에 살며시 넘어진다
어느 드라마를 잠시 연상한 후 저멀리 산청과 함양쪽의 운해를 또다시 감상한 후 억새풀을 헤치며 깃대봉을 향하는데 아막성터 근처에서부터 좋지않던 무릎 위쪽 근육이 또다시 여간 좋지 않아 물파스를 바르고 있는데 뒤 따라 오시던 김수근형님께서 찍찍이를 나의 양무릎에 뿌려주신다.

아픈 무릎을 조심스럽게 한발 두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