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변산의 쇠뿔바위봉에서 우금바위 뒤로 내려다 보이는 내고향마을 주산(배멧산)을 바라보면서.....
★.산 행 지: 내변산의 쇠뿔바위봉
★.산행일시: 2011년 12월 17일(토요일)
★.날 씨: 맑음
★.산 행 자: 六德이 아내와 둘이서
★.산행거리: 8.0㎞
★.산행시간: 3시간40분(쉬엄쉬엄)
★.산행코스: 청림마을→투구봉→새재→지장봉→쇠뿔바위봉→지장봉→새재→청림마을
★.산행후기:
오늘은 처가식구들과 함께 변산의 격포에 자리하는 대명콘도에서 1박2일 일정으로 모임이 계획되어 있어
아침 일찍 부안으로 내려가 부모님 산소를 들렸다 내변산의 쇠뿔바위봉을 산행한 후 오후에 대명콘도로
이동 처가모임에 참석하기로 한다.
서울과 의정부 그리고 목포와 해남에 흩어져 있는 처가식구들이 서로 편안하게 모이기 쉬운 장소를
찾다보니 거리상 중간쯤으로 경치가 좋은 내고향 부안에서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아침 7시에 아내와 함께 서울을 출발해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부안으로 달려가는데 서해대교를
지나니 눈발이 하나 둘 날리기 시작하지만 오늘 산행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돼 안심을
했으나 부안에 도착하니 전날 많은 눈이 내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이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부안군 보안면 월천리 고향으로 달려가 부모님의 산소에 도착하니 눈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나뭇가지로 눈을
치운 후 육신의 몸 관리를 잘못한 불효자식 찾아왔다고 인사를 드리는데 왜 그렇게 눈시울이 뜨거운지..
다음에 내려올 때는 내 다리의 건강을 1%라도 더 찾아서 지금보다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뵙겠다고
다짐을 한 후 굴바우와 바드재를 넘어 청림마을에 도착하니 더 많은 눈이 쌓여있는 것이 아닌가..?
청림마을 앞 창고 앞에 차를 주차시켜두고 산행준비를 끝낸 후 아내와 함께 마을 진입도로를 따라 마을로
들어서 산행을 시작한다.
재새로 오르는 길은 마을에서 우측의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야 하지만 오늘 코스를 “청림마을-투구봉-
새재-원효굴-마천대-동.서쇠뿔봉-와우봉-비룡상천봉-의상봉-구시굴-새재-청림마을”로 정했기에 마을
좌측으로 들어서 산길이 흐릿한 투구봉 방향으로 틀어 진행하는데 수북하게 쌓인 눈에 미끄러져 헛발질이
연속된다.
(앞서가는 아내)
(저 앞으로 진행하다 우측숲으로 올라가면 투구봉으로)
(아내의 포즈)
(나도 인증샷)
(잰장~~ 금방 올라올 길을 투구봉 들렸다 의상봉 오른다고 고생하고 왔네요...ㅎㅎ)
(지장봉의 위용)
(지장봉에서 인증샷)
(멀리 월명암을 바라보면서)
(고드름이 주렁주렁)
(물 이라도 마셔야 된다는 아내가 앞서가다 휴식을 취하고..)
(배고파 못가겠다고 하는 아내 / 간식도 안가져와 고생했네요)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 명년에 꼭 가봐야지...)
(우금바위 우측 뒤로 내고향마을의 뒷산인 배멧산/주산)
(우금바위 우측 뒤로 내고향마을 뒷산인 배멧산/주산)
(아내왈 어떻게 할까...자일을 걸고 내려가려 했지만 위험해서 그냥 포기..)
(뭔가 고심하는 아내)
(쇠뿔봉에서)
(여기로 들어서면 원효굴 가는 길인가..?)
(가시오가피나무)
(동쇠뿔봉에서 우측 능선으로 내려올려고 했었는데 눈 때문에 위험해서...)
(대명콘도에서 바라본 불꽃놀이)
(채석강에서)
(채석강)
(새만금의 삼각점)
변산 의상봉(義湘峰 508.6m)
-진표율사가 득도하고 이규보가 탄복한 미륵성지-
[내변산에 대해서..]
속세에 지친 삶의 활력소와 자신을 찾고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는 인간과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미륵성지 변산 의상봉으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변산은 정감록에 우리나라의 십승지로 소개되어 있으며 예부터 어염시초(魚鹽柴草)가 풍부해 생거부안(生居扶安)과 산해절승(山海絶勝)으로 유명하다고 하였다.
부안의 새해바다는 15년의 긴 공사 끝에 1억2천만평의 새로운 땅을 탄생시킨 세계에서 가장 긴 33km의 새만금방조제가 완공되었고 변산해수욕장과 채석강을 비롯한 위도와 모항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요즘은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서해앞바다에서 불 밝히고 고기잡는 웅연조대(熊淵釣臺)를 비롯한 직소폭포, 가인봉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내소사 저녁종소리(내소모종), 월명암의 밝은 달과 황홀한 운해(월경무애). 서해낙조 등의 변산 팔경도 볼거리다.
내변산 12경으로 꼽는 쇠뿔바위와 의상봉 마천대를 비롯한 내변산 12경과 외변산 12경, 그리고 해변산의 12경을 포함 36경이 자랑거리다.
변산의 조망대요, 최고봉인 의상봉(508.6m) 망해대에 올라서면 쇠뿔바위, 지장봉, 쌍선봉, 상여봉 등 서해바다를 한눈에 훑어 볼 수 있다.
또 부안에서 변산방향의 우슬재를 넘어서면 북쪽 산허리에 기기묘묘한 암벽이 병풍처럼 보이며, 비가 오면 암벽 곳곳이 폭포가 되어 한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옛날 어느 왕이 이곳에 머물며 물을 마셨다하여 어수대라 한다.
조선 중기 부안의 여류시인 이매창이 이곳에 올라 남긴 멋진 시한수를 남겼다.
천년왕업의 옛터엔/ 겨우 어수대만 남았어라//
지나간 옛일이야/ 누구에게 물으리오//
바람맞으며/ 서서 학만 바라보네
고려사에는 부안 변산과 장흥 천관산이 배 만드는 곳과 궁중의 재목생산지로 정해 질 정도로 숲이 울창했다고 기록될 정도다. 택리지의 비친 변산은 소금 굽고 고기잡이, 산중에는 기름진 밭이 많아 농사짓기에 알맞으며 땔나무와 조개 따위는 사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하다고 했다.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 그리고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는 의상봉 마천대의 일명 다람쥐절터로 불리는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고승 진표율사가 자기 몸을 던지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득도한 미륵불교의 성지로 추앙하고 있다.
또 이규보가 의상대사가 주석한 의상사와 의상봉을 답사하고 서해와 변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망해대로 선계(仙界)인지 불계(佛界)인지 모르겠다고 감탄했다.
지명 또한 의상봉, 관음봉, 지장봉 , 원효굴, 부사의방, 등 불교와 관련이 많고 유명한 사찰 터로 실상사, 청림사, 의상암, 등운사. 부사의 방장, 선계사 등이 즐비해 불교의 성지임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원효대사, 부설거사, 의상대사, 진표율사, 진묵대사, 월명 등 불가의 이름난 고승들이 변산에서 배출됐고, 근래에는 증산교의 창시자 강일순, 원불교의 소태산 등이 월명암을 비롯한 주변의 사찰에서 득도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정감록이 말하는 우리나라 십승지로써 손색없다.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일명 기상봉으로 불리는 의상봉은 통일신라 문무왕 때 고승 의상대사가 변산의 마천대(磨天臺) 북쪽에 의상사를 짓고 수도한데서 유래됐다.
신라 진덕여왕 때 고승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영조, 영희와 함께 수도를 가던 길에 벙어리인 묘화(妙花)라는 여인을 만나 말문이 열리게 했다.
그러자 그녀의 부모가 천상배필임을 알고 결혼을 청했으나 부설이 거절하자 묘화가 “억조창생을 구하려는 고승이 작은 계집의 소원도 못 들어 주느냐”는 말에 승복해서 묘화와 살며 월명과 등운 남매를 낳았다.
그는 현재 월명암 선방으로 쓰이는 부설암을 짓고 수도에 정진하면서, 딸에게는 월명암, 아내를 위해 월명암 옆에 묘화암(일명 묘적암), 아들에게는 등운사를 지어 수도케 했다.
월명암에서 홀로 수도하던 월명에게 불목하니가 음심을 품자 의상사에서 수도하던 의상대사에게 상의하여 그 청을 들어줬다.
그래도 끝임 없는 불목하니의 음심을 참지 못한 월명의 하소연을 듣다 못한 의상대사가 불목하니를 아궁이에 밀어 넣어 죽여 버리고 말았다.
결국 불목하니의 육보시(肉普施) 청을 들어준 월명은 생불하고 살인을 저지른 의상대사는 생불하지 못했다는 가슴 아픈 설화도 전해온다.
의상봉의 산줄기는 호남정맥 내장산 까치봉을 지나 백암산을 가기 전 순창새재 부근 530봉에서 가지 친 영산기맥(왼쪽 영산강의 분수령 목포 유달산까지 가는 산줄기)이 입암산을 지나 방장산 못미처에서 북쪽으로 지맥하나를 살며시 내려놓는다.
이 지맥이 변산지맥이며 이는 또 다시 북쪽 방향에 정읍 두승산줄기를 나누고 북서쪽으로 달리며 배풍산을 지나면 또 다시 북쪽으로 주산 줄기와 헤어져 서쪽으로 가다 곧바로 쌍선봉 줄기와 두 갈래를 친 뒤, 삼예봉, 옥녀봉을 지나 의상봉을 솟구친 뒤 서해바다에 잠긴다.
물줄기의 동쪽은 고부천을 통하여 동진강에 살을 섞다가 서해에 골인한다.
서쪽은 모두 작은 계곡을 이루다가 서해에서 동진강물과 조우한다.
황소의 두 뿔을 닮은 쇠뿔바위의 행정구역은 상서면 청림리, 의상대사가 마천대 아래에 의상사를 짓고 수도했다는 의상봉은 하서면 백련리, 산내면 중계리를 경계한다.
[산행안내]
제1코스:청림마을-삼거리-동쇠뿔바위(2,0)-고래등바위-(0.8)서쇠뿔바위-안부-북능-의상사터-(2.3)마천대(부사의방)-원효굴-신선바위-계곡길-(2.4)청림마을, 7.5km, 4시간50분(점심, 부사의방, 원효굴 답사시간 포함)
제2코스:하서면 가락골 705번도로-(2.6)옥녀봉-비룡상천봉-와우봉-(2,4)동쇠뿔바위-(0.8)서쇠뿔바위-(2.3)의상봉 마천대-원효굴-신선바위-(2.4)청림마을, 10.5km, 5시간50분
제3코스:남성동 756번도로-와우봉-(2.6)동쇠뿔바위-(0.8)서쇠뿔바위-(2.3)마천대-원효굴. 신선바위-(2.4)청림마을, 8.1km, 5시간20분소요
부안군 상서면 청림마을 표석 앞(736번도로)에 주차하고 마을 어귀로 들어서면 청림(靑林)이란 현판이 붙은 서원과 하얀 찔레꽃이 빈객을 맞는다.
이 마을은 청림사라는 큰 사찰 터가 있어 유래됐고 내소사에 있는 보물 227호인 동종도 발굴됐다.
우측의 수풀이 우거진 마을 입구 앞(건너편에 파란색 마을공동창고가 있음)에서 전답 뒤로 가면 북동쪽 숲길이 산행들머리다.
또 청림마을 표석에서 736번도로를 따라 0.5km쯤 동쪽으로 가다 상수도보호구역 간판과 석축이 쌓인 곳으로 오르면 지름길로 두 길은 중간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북동쪽 송림의 오름길이 제법 가파르다. 김씨 묘소를 지나면 송림길이 시작되고 묘소들이 능선에 계속 등장하고 서쪽으로 돔형상의 통신시설을 정수리에 인 의상봉이 모악산처럼 고통을 호소한다.
산행 15분쯤이면 736번 도로변의 석축 쌓인 지름길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
길이 넓은 곳에 잘 단장된 묘소2기를 지나 가픈 숨을 한바탕 몰아쉬면 전망대 바위에 닿는다.(청림에서 25분소요) 북쪽은 우뚝 솟은 두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쇠뿔바위가 머리를 압도할 듯이 다가서고,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의상봉이 눈인사한다.
청림마을에서 오는 갈림길(북서쪽)을 만나고, 돔같이 웅장한 서쇠뿔바위와 동쇠뿔바위 사이의 V자 협곡으로 올라 삼거리에서 동쇠뿔바위(456m)를 밧줄에 의지해서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훌륭하다.(청림에서 50분소요) 북동쪽 하서방향에서 뻗어온 산줄기에 옥녀봉, 용이 하늘로 승천한다는 비룡상천봉, 어수대, 와우봉이 꿈틀거리고, 눈앞에는 걸어가야 할 고래등바위, 서쇠뿔바위가 지척이다. 북쪽엔 의상봉, 그 너머로 서해바다가 너울거린다. 동쪽엔 왕관형상의 우금바위가 뚜렷하고, 남으로 옥녀봉, 용각봉, 세봉, 관음봉, 신산봉, 청림마을이 뒤질세라 서로 고개를 내민다., 서쪽으로 선인봉과 부설거사와 진묵대사가 주석했던 월명암이 있는 쌍선봉도 손을 흔든다.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진 고래등바위는 암벽을 내려갔다가 올라야하는 스릴만점의 코스다. 고래등처럼 험준한 암릉을 릿지하는 일행의 모습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고래등바위는 눈비가 오거나 초보자는 안전산행을 위해서는 우회해서 올라야한다.
능선에 올라 서쇠뿔바위 닿으면 북쪽을 빼 놓고 삼면이 암벽의 낭떨어지다.(청림에서 1시간 25분소요) 남으로 우금바위, 서북쪽으로 의상봉이 한눈에 잡힌다. 능선으로 되돌아와 새재를 거쳐 청림으로 가는 삼거리를 조우하고 북동쪽으로 걸으면 남쪽은 천길 암벽이고 북쪽은 송림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묘소가 마중 나온다.
울창한 송림에서 길 좋은 북동쪽(우측)으로 직진하면 와우봉, 어수대, 비룡상천봉, 옥녀봉의 산줄기를 타고 하서면 금광마을이나 우슬재를 거쳐 736번도로변의 남선동으로 빠진다. 의상봉 가는 길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등산로가 희미한 서북쪽(좌측)으로 내려가야 한다. 안부를 내려가다 계곡에서 너덜과 산죽길을 지나 서쪽 방향으로 희미한 길을 가다보면 북능을 만난다.
울창한 숲에서 발품을 팔면 능선길이 비교적 좋은 편이고 남쪽 새재로 하산길을 만난 뒤 서쪽으로 직진해서 작은 고스락을 넘어선다.
키를 넘는 산죽길을 지나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해창이나 백련리, 마천대는 서쪽으로 가야한다. 곧이어 우물과 묘소, 돌무더기와 머위가 진을 치고 있는 넓은 의상사 터에 닿으면 서쪽으로 의상봉 통신시설이 머리를 살포시 내민다. 의상사 터 바위엔 불일천(不日阡)이란 암각 글씨가 새겨져 궁금증을 자아낸다. 천일을 기도해야만 부처님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의상대사의 뜻일까. 아니면 우매한 중생을 향한 부처님의 오묘한 가르침일까. 불현듯 월명암에서 불도를 닦던 부설거사의 딸 월명의 불목하니를 살생하여 생불하지 못했다는 의상대사의 고뇌하는 환영이 눈앞에 어리는 것은 왜일까.
산죽과 너널길을 지나면 오름길에서 에너지를 소비해야한다. 원효굴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면 남쪽으로 병풍을 둘러친 듯한 암벽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비경이 연이어지는 마천대에 닿는다.(청림에서 2시간40분) 천길 암벽 아래로 지장봉과 투구봉, 그 뒤엔 부안댐의 물이 잿빛으로 일렁이고, 그 너머로 내변산의 쌍선봉이 고개를 내민다. 청림과 우동리를 잇는 바드재의 굽이진 고갯길이 지팡이 짚은 할머니 허리처럼 세월의 무게처럼 느껴진다. 진표율사가 절벽으로 몸을 던지고 망신참법(亡身懺法)을 통해 득도했다는 부사의방은 이곳에서 20m의 암벽 중간지점에 있다. 누군가 여러 개의 밧줄의 매어놓은 암벽을 유격 훈련하듯 내려가면 천길 절벽사이로 간신히 사람하나가 겨우 지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동굴에 암자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절벽에 네 평쯤의 반석 위에 주춧돌과 와편이 흩어져 있다. 기와를 얹은 집을 암벽에 쇠말뚝을 박아 잡아 맨 작은 암자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암벽에 쇠말뚝 박은 흔적과 다람쥐에게 밥을 줬다는 바위에 사각으로 된 구멍이 선명했다. 절벽아래를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린다. 오죽하면 전주목사로 부임한 이규보가 현령의 안내로 이곳을 방문했다가 “높이가 백자쯤 되는 나무사다리가 절벽에 의지해 있는데 이곳을 오를 때 다리가 와들와들 떨려 천신만고 끝에 진표대사 진용에(眞表大師 眞容)참배했다.”고 술회했겠는가.
마천대에서 북서쪽으로 오르면 의상봉으로 오를 수 있는데 지금은 공군부대의 통신시설 때문에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접근이 어렵다. 다만, 의상봉의 정상 망해대(望海臺)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불계인지, 선계인지 모를 비인간적으로 흠뻑 빠져들었다는 이규보의 답사기를 상상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부사의방 답사를 끝내고 삼거리로 되돌아와 남쪽으로 내려가니 지형도에 나온 원효동굴이다. 수직으로 깎아내린 듯한 암벽위에 부사의방이 자리잡고 있을 것으로 짐작됐다. 아마도 진표율사는 이곳에 이규보가 목격한 백자쯤 되는 나무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리며 수도에 정진했으리라.
넓은 굴 안에는 습기가 많아 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낙엽이 쌓여 미끄럽고 희미한 길을 내려오면 신선이 마천대 병풍바위와 변산의 비경을 굽어보며 노닐었을 것만 같은 신선바위에 닿는다. 북서쪽을 올려다보니 부사의방과 원효굴이 있는 암벽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져있다. 좌측의 쇠뿔바위와 우측의 지장바위가 눈앞에 버티고 섰다.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파묘한 곳을 지나 울창한 숲으로 든다. 지장바위를 좌측에 두고 내려가면 갈림길에서 남쪽은 쇠뿔바위와 새재로 가는 길이다.(마천대에서 40분소요) 동쪽으로 내려가다 물이 없는 계곡을 지나 조그만 고스락을 오르면 조금 전과 방향이 같은 사거리다. 직진하여 돌길을 거쳐 발걸음을 재촉하면 상수도보호구역 표시와 오가피재배지를 지나 청림마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면 정자에 닿는다. 이곳에서 보는 북쪽의 쇠뿔바위모습이 가장 잘 보이고 웅장했다. 북서쪽으로 의상봉도 보인다.(마천대에서 1시간소요)
[문화유적]
진표율사와 부사의방(不思議房,)
삼국유사에 기록된 진표율사의 일대기는 이렇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고승 진표율사(眞表律師)는 김제 만경에서 태어나 12세 되던 해 부모의 허락을 받아 금산사로 출가했다. 숭제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미륵과 지장보살 앞에서 지성으로 참회하여 친히 계법을 받아 세상에 펴라는 명을 받고 전국 사찰을 둘러봤다. 27세 때 쌀 스무 말을 쪄서 말린 양식을 가지고 부사의방에 들어가 하루식량을 다섯 홉으로 정하고 한 홉은 다람쥐에게 주며, 불도에 정진했다. 마침내 절벽으로 몸을 던지고, 온몸을 돌로 찍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득도하여 미륵불과 지정보살을 친견(親見)한 후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였으며 미륵불의 강림을 예언하고 많은 이적을 남겼다. 금산사를 중창한 뒤, 통일신라 오교구산(五敎九山)의 하나인 모악산에서 법상종(法相宗)을 열어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하였다. 속리산을 거쳐 금강산의 고성에 발연사(鉢淵寺)를 짓고 그곳에서 불법을 전하다가 입적했다.
그러나 진표율사의 행적에 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백제유민의 한을 미륵신앙을 통해 반 신라적인 이상사회를 건설했다는 견해다. 이는 익산의 미륵사의 미륵사상을 통해 신라 귀족층을 중심으로 발달한 범상종의 미륵신앙과 달리 옛 백제 땅에서 점찰계법을 통해 대중교화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훗날 이상사회를 이끌 구세주를 기대하는 신앙으로 발전하여 후백제 견휜으로 이어진다.
둘째, 미륵신앙을 통한 백제유민의 저항운동이 심해서 진표율사를 앞세워 백제유민을 회유하려했다는 것이다. 이는 백제유민출신인 진표가 경덕왕에게 계를 주고 엄청난 시주를 받았는데 정책적인 배려가 아니고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대목이라는 주장이다.
셋째, 진표율사에 대한 신라와의 밀착관계에 대한 평가보다, 종교현상을 그대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부사의방장을 방문해 칠언율시로 남긴 이규보의 소감을 감상해보자.
무지개 같은 사다리 다리 밑이 길어서(蚣矗危梯脚低長)
몸을 돌려 곧장 내리니 만 길이 넘네(回身直下萬尋强)
도인은 이미 가고 자취마저 없는데(至人已化今無迹)
옛집은 누가 붙들었기에 아직도 쓰러지지 않나(古屋誰扶尙不疆)
일장육척의 불상은 어느 곳으로 좇아 나타날는지(丈六定從何處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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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산의 벼슬아치 숨어들어 나그네임을 잊으니(完山吏隱忘機客)
손씻고 들어와 한 조각 향을 사르네(洗手來焚一辨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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