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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변산 위도 망월봉 파장봉

六德(이병구) 2019. 7. 24. 11:02

부안 위도(섬) 종주하기

.산행일시: 2019년 7월 27일(토요일)

.산 행 자: 아내와 함께 六德

.산행거리: 약 11.0km (깊은금: 8.4km)


.산행시간: 약 5시간30분 (깊은금: 약4시간)

.산행코스: 석금망금봉치도교도제봉개들넘교망월봉시름교파장봉36.1m위도방파제

.특기사항:

    1.7월 27일(토요일)



* 위도팔경

위도는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가 많다. 일찍이 위도사람들은 위도의 절경을 위도 팔경으로 읊고 있는데,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위도면 면소재인 진리마을에서 선비 또는 노인들이 모여 있다가 바라보이는 정경을 위도팔경으로 꼽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원모종(內院暮鐘) - 내원암의 저녁 종소리.

정금취연(井金炊煙) - 정금마을의 밥 짓는 연기.

식도어가(食島漁歌) - 식도에서 들려 오는 어부들의 노래소리.

망봉제월(望峯霽月) - 망월봉에 떠오르는 달.

봉산출운(鳳山出雲) - 진리 뒷산에 떠오르는 구름.

선소귀범(船所歸帆) - 벌금 앞바다에 귀항하는 돛단배.

왕등낙조(旺嶝落照) - 왕등도의 낙조.

용연창조(龍淵漲潮) - 진리마을 포구에 가득찬 바닷물.

 

 

* 위도 마을 소개

 

진리

면소재지. 위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진리엔 수군 진영이 있다하여 진말”(진마을)로 불려오다가 일제 때 진리라 칭했다고 한다. 현재 중고등학교, 우체국, 농협 등이 있다.

시름

진리에서 파장금으로 가다보면 파장금 못 미쳐 작은 마을이 바로 시름이다. 지형이 떡시루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시루로 불려 오다가 지금은 시름이라고 불린다고 전해진다. 시름엔 내연 발전소가 있다.

벌금 (筏金)

원래 지대가 낮은 지역으로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 소금을 생산하는 벌이라서 벌금이라 칭하게 되었다. 천혜자원의 위도 해수욕장을 끼고 있고, 당집 근처 야산 정상에는 수백 년 된 후박나무 숲이 있다.

파장금(波長金)

일제 중엽부터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근래까지 파시가 형성된 위도 제일의 항구이며, 여객선 입출항지이기도 하다. 파장금 이라는 이름은 폭풍이 몰아치면 어선들이 대피하는 마을로 물결이 길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금 (井金)

원래 지형상으로 볼 때 형체가 솥뚜껑과 같다하여 솥 정()자를 붙이고, 이곳에서 금이 나왔다 하여 금자를 붙여 정금이라 칭하였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마을에 물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우물 정()자로 바뀌었다. 만조시에는 위도와 떨어진 섬마을이지만, 간조시에는 걸어서 섬을 내왕할 수 있다. 옛날 정금 마을에 살던 장씨는 한때 엄청난 부를 이룬 적이 있는데, 엽전으로 본 섬과의 다리를 가설하려고 하였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치도

치도라 부르는 것은 마을 형태가 마치 꿩 모양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원래 치도리의 생업은 농업이었으나, 일제시 어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파시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초등학교가 있으며 마을 바다를 거쳐 1km 떨어진 곳에 딴치도가 있다.

깊은금 (심구미 마을)

깊을 심을 쓴 것처럼 마을이 매우 깊은 지형에 위치해 있다. 내원암 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 선운사 말사로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탱화가 전해 온다. 창건 당시에는 큰 종이 있어 저녁에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가 10km 떨어진 식도까지 들렸다고 전해 온다.

대리 (大里)

마을 형태가 큰 돼지의 목 형국이라 해서 "대저항"이라고 불리어 왔는데, 그후 대저항이 "대장"이라고 불려오다가 큰 대()자에 마을 리()를 붙여 "대리"라 불렀다고 한다. 대리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가 되었고, 대리마을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82-다 호()인 위도 띠뱃놀이가 전해오는 마을이다.

소리 (小里)

대리를 큰 돼지 목이라 불렀던 것에 비해 소리는 소돌목, 작은 돼지목이란 지명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

전막리 (前幕里)

원시적인 방법으로 마을 앞 갯벌에 대를 쪼개어 발을 엮고 살을 만들어 바다에 말뚝을 박아 살을 쳐놓고 고기를 잡았다고 하여 살막금이라 부르다가 전막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논금

유일하게 벼를 경작하여 논금이라 하였다.

미영금

논금을 지나면 넓은 모래사장과 조약돌 해변이 있는 조용한 미영금 해변이 보인다. 멋들어진 해안 절벽과 바위사이에 조심스럽게 들어앉아 있는 이곳은 섬의 정취를 느끼며 조용히 휴가를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거륜도 (車輪島)

지형이 수레바퀴 같다하여 거륜도 또는 차륜도라고 칭하였다. 주위에 내조도, 중조도, 외조도, 퇴깽이섬 등 기암이 장관을 이루고 낚시터로 유명하다. 그리고 섬에는 지네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다.

식도 (食島)

이곳이 바로 고슴도치 머리 앞에 놓여 있어 고슴도치의 밥이라 불리다가 일제 때 식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옛 부터 이곳에 물이 많이 나면 물밥을 먹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데, 식도에는 지하수가 없다. 촌로들의 말에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면 마을이 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왕등도 (旺嶝島)

위도 본섬에서 서북방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섬마을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정 관리들이 유배되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이곳은 이규보와 조선말엽의 유학자 간제 전우 선생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원래는 섬의 명칭을 왕등(王登)이라 칭하였는데, 간제선생이 입도하여 지명이 너무 높다하며 왕등도(旺嶝島)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격포항에서 출발한 배가 위도를 거쳐 항해를 하다보면 서쪽 멀리 물안개 위로 봉우리 두 개가 솟아오른다. 모시적삼 속에 감춘 여인네의 젖무덤처럼 생긴 쌍둥이섬,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다. 왕등도에는 송시열의 유배지이기도 했으며, 우암의 자손들이 지금도 진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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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위도팔경

위도는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가 많다. 일찍이 위도사람들은 위도의 절경을 위도 팔경으로 읊고 있는데,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위도면 면소재인 진리마을에서 선비 또는 노인들이 모여 있다가 바라보이는 정경을 위도팔경으로 꼽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원모종(內院暮鐘) - 내원암의 저녁 종소리.

정금취연(井金炊煙) - 정금마을의 밥 짓는 연기.

식도어가(食島漁歌) - 식도에서 들려 오는 어부들의 노래소리.

망봉제월(望峯霽月) - 망월봉에 떠오르는 달.

봉산출운(鳳山出雲) - 진리 뒷산에 떠오르는 구름.

선소귀범(船所歸帆) - 벌금 앞바다에 귀항하는 돛단배.

왕등낙조(旺嶝落照) - 왕등도의 낙조.

용연창조(龍淵漲潮) - 진리마을 포구에 가득찬 바닷물.

 

 

* 위도 마을 소개

 

진리

면소재지. 위도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정착하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진리엔 수군 진영이 있다하여 진말”(진마을)로 불려오다가 일제 때 진리라 칭했다고 한다. 현재 중고등학교, 우체국, 농협 등이 있다.

시름

진리에서 파장금으로 가다보면 파장금 못 미쳐 작은 마을이 바로 시름이다. 지형이 떡시루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시루로 불려 오다가 지금은 시름이라고 불린다고 전해진다. 시름엔 내연 발전소가 있다.

벌금 (筏金)

원래 지대가 낮은 지역으로 소금을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 소금을 생산하는 벌이라서 벌금이라 칭하게 되었다. 천혜자원의 위도 해수욕장을 끼고 있고, 당집 근처 야산 정상에는 수백 년 된 후박나무 숲이 있다.

파장금(波長金)

일제 중엽부터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근래까지 파시가 형성된 위도 제일의 항구이며, 여객선 입출항지이기도 하다. 파장금 이라는 이름은 폭풍이 몰아치면 어선들이 대피하는 마을로 물결이 길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금 (井金)

원래 지형상으로 볼 때 형체가 솥뚜껑과 같다하여 솥 정()자를 붙이고, 이곳에서 금이 나왔다 하여 금자를 붙여 정금이라 칭하였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마을에 물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우물 정()자로 바뀌었다. 만조시에는 위도와 떨어진 섬마을이지만, 간조시에는 걸어서 섬을 내왕할 수 있다. 옛날 정금 마을에 살던 장씨는 한때 엄청난 부를 이룬 적이 있는데, 엽전으로 본 섬과의 다리를 가설하려고 하였다는 재밌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치도

치도라 부르는 것은 마을 형태가 마치 꿩 모양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해온다. 원래 치도리의 생업은 농업이었으나, 일제시 어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칠산어장의 중심지로 파시가 형성되었던 곳이다. 초등학교가 있으며 마을 바다를 거쳐 1km 떨어진 곳에 딴치도가 있다.

깊은금 (심구미 마을)

깊을 심을 쓴 것처럼 마을이 매우 깊은 지형에 위치해 있다. 내원암 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는데, 선운사 말사로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탱화가 전해 온다. 창건 당시에는 큰 종이 있어 저녁에 울려 퍼지는 은은한 종소리가 10km 떨어진 식도까지 들렸다고 전해 온다.

대리 (大里)

마을 형태가 큰 돼지의 목 형국이라 해서 "대저항"이라고 불리어 왔는데, 그후 대저항이 "대장"이라고 불려오다가 큰 대()자에 마을 리()를 붙여 "대리"라 불렀다고 한다. 대리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가 되었고, 대리마을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 82-다 호()인 위도 띠뱃놀이가 전해오는 마을이다.

소리 (小里)

대리를 큰 돼지 목이라 불렀던 것에 비해 소리는 소돌목, 작은 돼지목이란 지명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

전막리 (前幕里)

원시적인 방법으로 마을 앞 갯벌에 대를 쪼개어 발을 엮고 살을 만들어 바다에 말뚝을 박아 살을 쳐놓고 고기를 잡았다고 하여 살막금이라 부르다가 전막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논금

유일하게 벼를 경작하여 논금이라 하였다.

미영금

논금을 지나면 넓은 모래사장과 조약돌 해변이 있는 조용한 미영금 해변이 보인다. 멋들어진 해안 절벽과 바위사이에 조심스럽게 들어앉아 있는 이곳은 섬의 정취를 느끼며 조용히 휴가를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거륜도 (車輪島)

지형이 수레바퀴 같다하여 거륜도 또는 차륜도라고 칭하였다. 주위에 내조도, 중조도, 외조도, 퇴깽이섬 등 기암이 장관을 이루고 낚시터로 유명하다. 그리고 섬에는 지네가 많은 것이 특징이라고 알려져 있다.

식도 (食島)

이곳이 바로 고슴도치 머리 앞에 놓여 있어 고슴도치의 밥이라 불리다가 일제 때 식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옛 부터 이곳에 물이 많이 나면 물밥을 먹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데, 식도에는 지하수가 없다. 촌로들의 말에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면 마을이 흉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왕등도 (旺嶝島)

위도 본섬에서 서북방으로 약 20km 지점에 위치한 섬마을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정 관리들이 유배되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이곳은 이규보와 조선말엽의 유학자 간제 전우 선생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원래는 섬의 명칭을 왕등(王登)이라 칭하였는데, 간제선생이 입도하여 지명이 너무 높다하며 왕등도(旺嶝島)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격포항에서 출발한 배가 위도를 거쳐 항해를 하다보면 서쪽 멀리 물안개 위로 봉우리 두 개가 솟아오른다. 모시적삼 속에 감춘 여인네의 젖무덤처럼 생긴 쌍둥이섬,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다. 왕등도에는 송시열의 유배지이기도 했으며, 우암의 자손들이 지금도 진리에 살고 있다.